[MLB] 무의미한 찬호와 노모의 색깔 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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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노모와 박찬호는 같은 팀에 있었다는 것부터 같은 동양인 선수라는 점까지, 그동안 많은 비교가 있어 왔다.

노모를 보자면 무엇보다 근성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다소 끈적끈적하다는 느낌을 받는 다는 미국기자들의 소감처럼 그는 좀처럼 그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일본에서 신인왕부터 출발해서 4년 연속 다승왕에 탈삼진왕까지 그가 일본프로야구에 기여한 족적은 엄청나지만 사실 그 안의 스토리를 보면 대단한 근성의 소유자라는 단어를 빼놓을 수가 없다.

'야구가 인생의 전부'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노모의 집념과 고집은 유명하다. 93년 일본야구 초유의 4년 연속 다승왕을 노리던 노모는 경기중 타자가 친 공에 맞아 두개골 골절이라는 큰 부상을 입었지만 경기를 강했했다. 노모는 부상의 후유증으로 사사구를 9개나 허용하면서도 7이닝까지 144개의 공을 던지며 3실점으로 막아 승리를 차지했다.

4일 뒤 다시 출장한 노모는 182개의 공을 연장 10회까지 던지고 승리했다. 다시 4일 뒤 시즌 마지막 시합에서 연장 11회까지 177개의 공을 던지고 승리해 결국 다승 공동 1위를 쟁취하고 만다. 9일간 무려 503개의 공을 던졌던 셈이다.

시카고 컵스와 계약체결을 할 기회가 있었을 때 옵션포함 280만불의 연봉을 받을 수 있었지만, 마이너리그에서 좀 더 뛰다 오라는 지시에 반발해 당장 메이저리그에서 뛰게 해준다는 조건 하나로 최소 연봉의 수모를 감내하고 밀워키로 옮긴 것을 보아도 그의 야구에 대한 근성을 알 수 있다.

야구생각만 하고, 지는 것은 죽기보다 싫어하는 노모이지만 막상 승리나 영광의 순간에도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가 거의 없다. 짤막하게 '동료들에게 감사한다' 정도로 그만이다. 올해 미국 메이저리그사의 양대 리그 동시 노히트 노런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한 역대 4번째 투수에 올라가며 다시 부활한 노모는 고난과 수모를 참아가며, 주위의 호들갑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자기 길을 걷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그가 팀을 여러번 옮겨가며 현재의 팀(보스턴 레드삭스)에 정착을 하면서도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과 운동만을 생각하는 투지, 그리고 그 만의 고집이 대기록을 나타나게 한 원동력일 것이다.

한편 찬호는 한국 프로야구를 접하지 않고 바로 미국으로 와서 마이너리그에서 충분히 실력을 기른 다음 메이저리그로 올라온 미국의 눈에서 보면 지극히 정통의 코스를 걸어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젊은 어깨의 싱싱함을 인정받아 에이스론까지 나오는 다소 성급함까지 한국의 언론은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그동안 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성공할수 있는 요인으로는 성실함을 주저없이 꼽을 수 있다. 무엇이든 자신이 좋은 것으로 얻는다고 생각이 든다면 주저없이 자신을 숙이고 들어가는 배움의 정신 때문에 찬호는 빠르지는 않지만 서서히 적응해 나갈수 있었고 그런 그의 행동과 모습 하나 하나에 어쩌면 다저스가 높이 평가했을 수도 있다.

사실 언어의 극복에서도 두 사람의 색깔은 분명하게 난다. 한국의 언론에서는 찬호는 열심히 영어공부를 하고 노모는 아예 배울 생각을 하지 않는 다는 식으로 매도하는 성격이 짙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스타일의 차이일 뿐이다.

찬호는 그의 일상생활 대부분을 미국식에 고수하고 싶어 한다. 미국식 문화에 모든것을 맡기고 자신은 그저 여유롭게 따라간다는 입장이다. 찬호의 영어 인터뷰를 보면 분명 어색한 곳이 한두군데가 아니지만 어느누가 그의 영어를 보고 인상을 찡그릴 것인가? 우리는 그의 영어를 들으면서 그가 그만큼 생활의 모든 것에 적응도를 키우고 싶어한다는 의미부여에 대해 깊은 공감을 표시한다.

반면 노모는 미국의 틀 안에서도 자신의 분명한 틀을 지키고 싶어한다. 그래서 영어라는 분야는 노모에게 아마도 일부러 배우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관심이 없다는 쪽이 더 맞을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터뷰할 때 보는 찬호의 콩글리쉬나 통역을 당당하게 요구하는 노모의 태도가 아니라 모두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즐긴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는 그들의 모습은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관심거리지만 그들의 진정한 모습을 지켜봐야 할 것은 공에 들어있는 그들의 성실함과 근성이라는 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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