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푸른안개 "드라마 시청률 연연안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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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왕궁에선 시청률이 높아야 대우를 받는다. 그 수치에 따른 재상대접도 받고 때론 앙위에 오르기도 한다, 만약 시청률이 10%를 넘지 못한다면? 당연히 성밖으로 좇겨나 궁핍한 생활을 간수해야 한다. 그런데 이 왕국의 생존법칙을 거스르는 프로그램이 있으니 바로 KBS2의 20부작 주말극 '푸른안개'(연출 표민수 ·극복 이금림) 다.

15 일 8회까지 방영된 이 드라마의 평균 시청률은 9% 남짓. 그럼에도 '거짓말' '바보같은 사랑' 을 통해 스타일리스트로 인정받은 표민수PD의 작품답게 매니어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 '거짓말' (1998) 매니어들이 결성한 동호회(http://user.chollian.net/~hilmw)는 표PD가 만드는 모든 드라마에 대해 토론을 벌일 정도다.

'푸른안개' 홈페이지 게시판에도 "드라마를 보고 나면 긴 한숨과 함께 뜨거운 감정이 솟구친다" 는 식의 글이 수없이 올라 있다.

특히 스물세살 재즈댄스 강사 신우(이요원) 와 재벌회사 사장인 46세 유부남 성재(이경영) 의 사랑이라는 기본 구도는 불륜 조장, 심지어 일종의 원조교제 아니냐는 비난을 사기에 충분하지만 절제된 화면과 탁월한 심리묘사로 위험수위를 넘지 않고 있다는 평이다.

예를 들어 신우가 성재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원거리에서 30초 이상 화면에 담아 사랑의 감정을 보여준다거나 휴대폰을 쥔 손으로 성재의 주저하는 태도를 표현하는 것이 이 드라마의 수준을 받쳐주는 장면들이다. 게다가 나탈리 만서의 첼로.피아노 협주곡 '천사들' 등 주제곡들도 분위기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이 곡들은 곧 음반으로 나온다.

표PD는 이렇게 설명했다. "성재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그러다 우연히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게 뭔지 돌아볼 계기가 생긴 거죠. 주위에서 아무리 손가락질해도, 그래서 너무 아프고 힘들어도 기를 쓰고 사랑하려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걸 얘기하려는 겁니다. "

이렇게 정서적인 면에 치중하다 보니 인기 드라마의 문법이랄 수 있는 복수.배신.성공 이야기를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해 시청자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기 어렵다. 사랑을 통속적 방식으로 풀지 않으니 시청자들은 항상 긴장해서 봐야 하고, 그러다보니 느긋하게 TV를 보며 세상을 잊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호소력을 갖지 못한다는 뜻이다.

표 PD의 표현을 빌리면 드라마의 트러블메이커, 즉 팥쥐 역할을 하는 등장인물이 없다.

아쉬운 점은 성재가 가정에서 겪는 감정의 변화가 제대로 그려지지 않아 드라마의 현실감이 다소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 점은 앞으로 전개될 극의 흐름에서 성재와 신우가 겪게 될 고난과 이별의 아픔을 미세하게 담아내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지도 모른다.

표PD는 "초반에 속도를 내다보니 성재가 가정에서 겪는 갈등과 고민이 약간 생략됐다" 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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