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의 어퍼컷] 짜증 유발자 PPL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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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SBS ‘신사의 품격’의 한장면. 장동건이 타고나오는 차량 등 인기도만큼 PPL이 많은 드라마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주인공 이연희가 모델인 화장품 로고를 맥락없이 노출시켜 비난을 받은 SBS ‘유령’. PPL은 극의 흐름과 얼마나 맞아떨어지느냐가 성패의 관건이다. [사진 SBS]

지난 19일 SBS ‘유령’. 극중 사이버수사대원 이연희가 동료 임지규로부터 화장품선물을 받는 장면이 나왔다. “더 아름다워 지세요”라는 대사와 함께다. 이연희가 모델인 SK2 화장품 포장지와 용기가 노출됐다. “더 아름다워 지세요”는 이 화장품 광고 카피기도 하다. ‘유령’은 이전에도 뜬금없이 방바닥에 뒹굴거나 화장대위에 놓인 SK2 용기를 클로우즈업해 빈축을 샀다.

 CJ계열 채널 올리브의 ‘마스터 셰프 코리아’는 지난 6일 아예 CJ백설 토마토소스를 이용한 요리 미션을 냈다. 경연 참가자들은 시종 “토마토 소스가 풍부하다”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방송 도중, 이 제품의 높은 토마토 함량을 강조한 중간광고도 이어졌다. ‘마셰코’의 심사위원인 강레오 셰프는 지난달 tvN 토크쇼 ‘택시’에 출연해서도 토마토 소스를 사용한 요리를 선보였다. “토마토 함량이 높은 소스를 사용하는 게 좋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TV 프로그램의 무리한 간접광고(PPL)들이 시청자의 빈축을 사고 있다. 간접광고는 법적으로 허용돼 있고 전세계적인 트렌드이지만, 극의 흐름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고 노골적인 내용으로 시청자의 반발을 사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최근 국내 드라마들은 제작비의 3~15%가량을 PPL로 충당할 정도로, 그 비중이 커지고 있다. 인기 프로일수록 PPL 강자다. 가령 SBS ‘신사의 품격’은 차량, 휴대전화, 식음료품, 책, 약품, 프랜차이즈업체, 의상소품 등을 망라한다. 회당 PPL 비용도 각각 수천만원에서 억대에 이른다. 지난 15일 최종미션을 S오일 사무실에서 촬영하고 ‘구도일’ 캐릭터를 출연시킨 SBS ‘런닝맨’처럼 오락프로의 PPL도 심하다.

 문제는 극의 내용에 맞지 않고 한눈에 봐도 광고임이 분명한 억지스러운 장면들. 평소 ‘유령’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는 한 시청자는 “이건 프로그램안에서 대놓고 직접광고를 한 셈인데 드라마의 질만 떨어뜨렸다. 최소한의 노력도 없이 시청자를 우습게 보는 것 같아 불쾌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노골적 PPL이 증가하는 이유를, 국내 드라마 제작환경에서 찾는다. 제작비를 충분히 확보한 뒤 PPL을 진행하는 외국과 달리, 일단 닥치는대로 PPL을 유치한 후 극에 우격다짐으로 밀어넣는 제작환경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사이버수사물이라는 장르와 화장품 PPL이 애초부터 어울리지 않았던 ‘유령’, 왕자인 이승기가 시도때도 없이 도너츠만 먹는 설정이 억지스럽단 평을 받은 MBC ‘더킹 투하츠’가 대표적이다. ‘더킹 투하츠’는 이승기가 모델인 던킨도너츠를 PPL하면서 제목까지 바꾸었다는 의혹도 받았다.

 현재 간접광고는 전체 방송시간의 5%, 전체 화면의 1/4 이하로 허용돼 있다. 시청 흐름을 깨며 본말이 전도된 과다하고 변칙적인 PPL에 대해서는 좀더 세심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성욱 백제대 교수는 “해외에도 PPL이 일반화돼있으나 극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시청자가 의식하지 못하고 거부감도 덜하다. 프로그램의 질적 완성도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효과적인 PPL 방안을 찾는 제작진의 양식과 수준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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