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제도' 때문에 죽는 건설업

중앙일보

입력

'1천7백억원 짜리 공사가 8백70억원에-. '

지난달 27일 조달청은 '인천신도시 기반시설공사' 를 절반 값에 D사에 발주했다. 이만저만한 덤핑이 아니었지만 "손해를 보겠다" 는 업체는 얼마든지 있었다.

입찰 참여 22개사 모두 '제값〓예정가의 80% 수준' 아래로 일을 맡겠다고 경쟁을 했다. 예정가격의 50%대(帶)로 입찰한 업체가 6개사였고, 60%대도 6개사, 나머지 10개사는 70%대였다.

경쟁이 이처럼 치열했는데 어떻게 D사가 낙찰을 했을까. 올해 새로 시작한 '최저가 낙찰제' 덕분이다. 정부는 제비를 잘 뽑아 일을 따는 운찰제(運札制)방식을 시장경제의 룰에 따라 기술력이나 재무상태가 좋은 업체가 일을 따는 방식으로 바꾼다며 입찰제도를 "정부 공사 중 1천억원 이상 짜리는 가장 낮은 가격에 투찰하는 업체에 일을 준다. 다만 '공사를 할 수 있다' 는 공사이행보증서를 첨부하라" 로 바꿨다.

업체들은 건설공제조합.서울보증보험 등 두곳에서만 보증서를 받을 수 있는데, 그게 함정(陷穽)이었다.

한 보증기관은 '낙찰률이 58.4% 미만이면 보증수수료를 할증하고, 유가증권 담보를 받겠다' 는 조건이었고, 다른 기관은 '우량업체엔 58.4% 미만이라도 담보없이 보증서를 발행하겠다' 였다. 게임은 여기서 끝났다. 담보 댈 능력이 없는 대다수 업체들은 58.4%를 살짝 넘긴 금액으로 치열하게 경쟁했지만, 우량사인 D사가 그 밑으로 치고 들어오는 데는 속수무책이었다.

다음엔 어떻게 될까. 이번엔 "그렇게 낮게는 할 수 없다" 며 여러 우량사들이 입찰을 포기했지만 그들이 언제까지 젊잖기만 할까. 올해 공사 70여건(약 9조원어치)을 모두 놓치면 경영 자체가 안된다는 걸 그들이 더 잘 알기 때문에 결국은 우량사끼리 낙찰률 낮추기 경쟁이 벌어질 게 뻔하다.

사정이 이런 데도 정부는 계속 싼값에 일을 맡긴다며 쾌재를 부를 것인가. 덤핑한 업체가 무슨 돈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경영을 개선할까 생각해야 한다.

이대로는 건설업 전체가 '제도 때문에' 어려워진다. 하루빨리 '일을 할 수 있는 업체에 제 값을 주며 맡기는 방식' 으로 가야 한다.

음성직 전문위원 eums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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