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분식회계 근절 대책의 핵심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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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의 분식회계 근절 대책의 핵심은 두 가지다. 수십년 동안 계속돼온 장부 조작 관행을 단절하는 한편 앞으론 회계 분식 기업에게 혹독한 대가를 치르도록 한다는 것이다.

과거와의 단절을 위해 금감원은 감독당국의 권한인 감리의 한시적 유예를 내놓았다. 금감원 관계자는 "잘못을 고백받은 뒤 그 잘못을 조사해 제재할 수는 없지 않으냐" 며 "적어도 감독당국 차원에선 과거의 회계분식에 대해 면죄부를 준다는 뜻" 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업의 비리가 드러나거나 과거 분식에 대해 투자자가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는 다른 문제" 라고 못박았다. 사법당국의 단죄나 개인 투자자의 민.형사상 소송 제기에 따른 책임까지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 이런 경우에는 금감원의 특별감리가 실시될 수도 있다.

어쨌든 이번 조치는 그동안 누적 분식을 끌어안아온 기업들을 투명회계 시대로 끌어내는 일종의 유인책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일섭 한국회계연구원장은 "금감원이 어려운 결정을 했다" 면서 "한번은 이런 식의 면죄부를 주는 게 불가피하다" 고 말했다.

금감원은 또 누적된 분식을 털어낼 때 나타날 수 있는 혼란을 흡수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했다. 금융기관을 이용할 때 불이익을 유예하기로 했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부풀린 이익이 줄어들면 시장의 평가가 나빠져 자금 구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 한번 시작한 분식을 쉽게 멈출 수 없었던 이유이므로 금리나 대출 등 금융상 불이익이 유예되면 기업의 장부조작 유혹이 줄어들 것" 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재무제표가 악화된 기업에 돈을 빌려주느냐 여부는 전적으로 은행 자율이지만, 투명한 회계정보를 가진 기업을 우대한다는 점에 은행과 감독당국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어 별 문제가 없을 것" 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치는 2000사업연도에만 적용되는 한시적 조치다. 즉 3월 말로 결산 공시가 모두 끝난 12월 결산법인의 경우 이미 작성한 재무제표에서 과거 분식을 털어냈어야 한다.

3월 결산 법인과 6월, 11월 결산법인들은 아직 장부를 제대로 작성할 시간적 여유가 있다. 따라서 시장에선 "금감원의 대책 발표가 늦어지는 바람에 결산 시기에 따라 구제받을 수 있는 기회가 달라지게 됐다" 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지난해 말부터 간접적으로 과거의 분식을 털어내라는 이야기를 충분히 전달했다" 고 주장했다.

금감원은 이와 함께 앞으로 적발되는 회계분식을 엄단하기로 했다. 금감원은 장부 조작이 드러나면 벌칙금리를 물리는 것은 물론 기존 대출의 만기 연장을 중단하고 신규 대출을 끊기로 은행과 협의를 마쳤다.

매출이나 이익을 부풀리는 등 장부에 분칠을 하는 분식회계의 최대 동기인 '금융상 혜택' 을 막겠다는 것이다.

또 장부를 감사하는 회계법인과 회계사에 대한 과징금을 각각 5억원과 1억원으로 강화해 분식회계에 동조했다가 발각된 감사인들이 지불해야 할 비용을 높였다.

회계분식 사실을 공개하도록 한 것도 시장의 힘으로 부실장부를 만든 기업이 퇴출되도록 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번 대책 가운데 서로 충돌하는 부분도 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집단소송제에 분식회계를 한 감사인과 기업이 포함돼 있어 현실적으론 기업의 과거 분식 고백이 쉽지 않을 것" 이라고 진단했다.

교보증권 김석중 이사는 "소액 투자자 등이 기업이 인정한 과거 분식에 대해 소송할 경우 법정에서 질 게 뻔해 얼마나 많은 기업이 과거의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할지는 미지수" 라고 말했다.

◇ 전기오류수정손익=전년도 회계처리상 실수 또는 분식회계 등으로 잘못 반영된 이익이나 손실을 새로운 대차대조표상의 전기이월잉여금에 반영하는 것이다. 손익계산서상 손익부분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상렬 기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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