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개 … 끝없는 공포의 벙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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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일랜드의 그레이엄 맥도웰이 연습라운드가 열린 18일(한국시간) 9번 홀 그린 앞에서 벙커샷을 하고 있다. 벙커의 그린 방향 턱이 유난히 높다. [리덤(영국) 로이터=뉴시스]

배상문(26·캘러웨이)은 벙커 속에서 고민에 빠졌다. 17일 연습라운드 도중 11번 홀 페어웨이 벙커에 들어간 그는 그린 쪽으로 칠지, 그냥 옆으로 빼낼지를 놓고 고개를 갸웃했다. 배상문은 모험을 시도했다. 그가 그린 쪽으로 친 공은 벙커 턱 중간에 박히고 말았다. 오기가 생긴 그는 공을 빼내 다시 그 자리에 놓고 쳐 봤지만 역시 나가지 않았다. 세 번째 친 공도 벙커에 걸리자 배상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공을 들고 나왔다.

 152년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저대회인 디 오픈 챔피언십이 19일 오후(한국시간) 영국 맨체스터 인근의 로열 리덤 앤드 세인트 앤스 골프장에서 개막한다. 디 오픈이 열리는 링크스는 항아리 벙커로 유명하다. 로열 리덤은 오픈 챔피언십이 열리는 링크스 9곳 중에서도 가장 벙커가 많다. 무려 205개나 된다. 최경주는 “티잉그라운드에서 보면 페어웨이는 끝없는 항아리 벙커의 행렬이고 페어웨이에서 보면 그린 쪽은 벙커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요즘 최고 수준의 선수들에게 벙커는 별 위협이 안 된다. 그러나 로열 리덤의 벙커는 말 그대로 함정이다. 특히 페어웨이 벙커가 무섭다. 아주 깊지는 않지만 좁고 그린 쪽으로 턱이 높아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다. 2001년 이곳에서 열린 디 오픈 챔피언십 때 얘기다. 데이비드 듀발(미국)은 경기 전 페어웨이 벙커에 들어가면 절대로 그린을 겨냥해 샷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2라운드에서 페어웨이 벙커에 빠졌는데 그린까지 110야드에 불과해 샌드웨지로 그린을 겨냥했다. 공은 벙커 턱에 맞고 다시 그 자리로 굴러 들어왔고 더블보기를 했다. 여기서 교훈을 얻은 듀발은 철저히 벙커를 피해 다니며 우승할 수 있었다.

 코스는 7086야드로 메이저대회 치고는 짧지만 벙커 때문에 가장 어려운 코스 중 하나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벙커 샷이 좋은 선수도 유리할 것이 없고 벙커에 빠지지 않는 선수가 훨씬 유리하다고 본다. 타이거 우즈(미국)는 “잘 친 샷도 굴러서 벙커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벙커들을 완전히 넘기거나 완전히 짧게 쳐야 한다”면서 “드라이버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용은(40·KB국민은행)은 한국시간 오후 4시20분, 타이거 우즈는 5시42분, 김경태(26·신한금융그룹)는 8시48분 출발한다. 최경주는 9시32분, 배상문은 9시43분 티오프한다.

 J골프는 1라운드를 19일 오후 5시부터 다음 날 오전 4시까지 생중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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