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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악한 내 딸을 고발합니다 세계인구감소의 주범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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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지루하고 긴 여행 끝에 두 딸 부부가 사는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끈적이는 서울 날씨와 달리 쾌적하다. 공항에 나온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마치고 일단 큰딸 집으로 향했다. 마지막 본 게 지난겨울이니 6개월 만이다. 보고할 게 많은지 큰딸이 쉬지 않고 조잘댄다.

 “엄마, 나도 한국 엄마 맞나 봐. 우리 에이미가 유치원에서 배운 걸 테스트한다고 해서 전날 밤새도록 가르쳤더니 다음 날 에이미가 전체 1등 했어. 시험 본다니까 나까지 긴장되더라고.” “내일은 뭐 할 건데?” “내일은 에이미랑 로커랑 운동하는 날이야. 선생님이 와서 애들 데려갈 거니까 엄마가 문 좀 열어줘.” 입만 떼면 에이미랑 로커 얘기다. 집에 도착했다. 언제 샀는지 이동식사우나도 있다. 부자동네 중고시장에서 헐값에 구입했단다. “잘됐네. 엄마는 피곤해서 사우나 좀 해야 되겠다.” “얘들도 사우나 좋아하니까 같이 해.”

 “개새끼가 뭔 사우나야?” “에이미 멕시코산이라 더운 거 좋아해. 에이미야, 로커야, 할머니랑 사우나해라. 엄마는 운동하러 갔다 올게.”

 이동식화장실같이 생긴 사우나 박스 안에 개새끼 두 마리와 같이 앉았다. 그나마 건조 사우나라서 다행이지 습식이었으면 옷 벗고 개새끼들이랑 같이 나뒹굴 뻔했다.

 미국 명문대학 나와 명문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는 큰딸. 남편도 컴퓨터회사의 유능한 직장인인데 얘들이 애 낳을 생각을 안 한다. 이유를 물었다. 돈도 많이 들고 잘 키울 자신도 없단다. 개새끼들 유치원 보내고 운동시키는 돈에 조금만 더 보태면 되지 않겠느냐 했다. 돈도 돈이지만 애가 생기면,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하지도 못하고, 또 벌여 놓은 일도 많고. 그래서 안 된단다. “육아휴직 사용하면 되잖니. 애 낳고 얼마간은 쉬엄쉬엄하면 될 터인데.” 불경기에 간신히 잡은 직장이라서 눈치 보여 그럴 수도 없단다. 첫 학기라 준비할 것도 많고 밤샘 일도 많은데 일하면서 운동하고 애는 언제 보느냐고 절대로 안 된단다. 단호하다. 혜민 스님이 트위터에 올린 글 얘기를 해줬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45분 정도 아이와 놀아주라 하더라. 그러면 맞벌이 엄마라도 아이에게 덜 미안할 거라고.

 “낳아 놓고 놀아 줄 시간이 없다는 것도, 그래서 늘 죄스러울 것도, 그렇다고 꼭두새벽에 일어나서 놀아 줄 처지는 더욱더 아닌 것도, 모두 다 알기 때문에 안 낳는 거야” 하더라.

 유난히도 애들을 좋아하던 딸이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가 단순히 돈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애를 낳음으로써 얻는 것과 잃는 것 중 잃는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곳이나 저곳이나, 이런저런 이유로 ‘무자식 상팔자’ 부부가 넘쳐나니 큰일이다.

 출산율을 올리려면 어쩌면 훌륭한 보육정책 못지않게 출산에 대한 긍정적인 가치관을 심어 주는 일이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글=엄을순 객원칼럼니스트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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