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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만 키운 협동조합기본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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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최양부
iCOOP생협 유기식품클러스터 추진위원장

지난 7일 협동조합의 날을 맞아 서울시청 광장 일대에선 2012년 세계협동조합의 해와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을 축하하는 기념식과 난장 한마당 행사가 열렸다. 이런 행사,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다. 행사가 국가적 관심 속에 열리는 것을 보면서 ‘이런 날도 오는구나’ 하는 생각에 감회가 새로웠다.

아쉬운 것은 이번 행사가 협동조합운동가들과 정부, 지자체 관계 공무원과 시민이 소통하고 즐기는 축하의 난장이 아니라 행사장을 채우기 위해 불려 나온 사람들과 뒤엉켜 동상이몽의 어색한 만남을 연출했다는 점이다.

 준비 안 된 정부는 협동조합에 갑작스러운 관심을 보이고 있다. 설익은 협동조합기본법엔 기대와 우려가 함께 나온다. 협동조합 설립이 자유로워졌다는 점에서 기본법 제정의 의미는 크다. 기획재정부가 주무 부서라는 점도 기대감을 키운다. 그러나 무엇을 하기 위해 협동조합을 만드는지, 협동조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백화제방이고 중구난방이다. 기본법이 협동조합을 영리도 비영리도 아닌 그냥 ‘법인’이라고 해놓고 결국에는 상법의 준용을 받는 영리법인으로 규정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다. 협동조합을 개별적 협동조합 유형 가운데 하나인 사회적 협동조합과 대칭적으로 양분해 놓고, 사회적 협동조합을 비영리법인으로 인정하고 다른 협동조합에 대한 차별적 지위를 부여한 것도 협동조합에 대한 역차별 시비와 정체성 혼란을 부르고 있다.

 사실 협동조합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협동경제사업체다. 그러나 협동조합이 일반 기업과 다른 것은 자본이 아닌 사람(조합원)을 기반으로 하고, 투자자의 자본수익 극대화가 아니라 조합원의 후생 극대화를 목표로 하며, 사업의 대부분은 설립자인 조합원이 이용한다는 점이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 조합원은 사업체를 지배·통제하고 경영은 전문인이 책임진다. 사업 후 발생한 수익은 협동조합에 재투자하거나 조합원에게 되돌려준다는 점에서 사회적 성격을 가진 사업체이지 영리법인은 아니다. 그렇다고 협동조합을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으로 착각하면 이 또한 잘못이다.

 19세기 중엽 시장경제의 경제적 약자들이 모여 협동조합 경제를 시작한 지 150여 년이 지나면서 협동조합은 이제 시장경제하의 기업경제나 공공경제가 아닌 제3의 경제로 자리 잡았다. 치열해진 시장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협동조합 간 합병과 연대를 통해 규모화·전문화가 이루어지고 경쟁력 있는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협동조합은 이제 일반기업과 경쟁하는 99%에 의한, 99%를 위한, 99%의 경제사업체로서 자리를 확보했다. 협동조합은 경제위기 때 일자리 창출과 고용안정 등에 있어 일반기업보다 우수했다.

 그러나 기본법은 협동조합과 사회적 협동조합을 뒤섞어 놓는 잘못을 저질렀다. 영리법인으로 단정해 일체의 우대조치에서 배제하는 우를 범했다. 협동조합이 경제사업체로서 일반기업에 비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장치도, 효율적 경영을 지원하는 조치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런 잘못을 바로잡기보다는 협동조합 설립의 자유를 얻은 것에 만족한다면 이는 공허한 자유일 뿐이다. 오히려 정부의 지원이나 받으려는 ‘가짜’나 ‘관변’ 협동조합만을 양산할 수도 있다. 설익은 법과 급조된 관변 전문가, 준비 안 된 정부가 기본법 시대의 협동조합을 어디로 끌고 갈지 걱정이 앞선다.

최양부 iCOOP생협 유기식품클러스터 추진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