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 길라잡이] '여우의 전화박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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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라는 말에는 신비와 환상의 느낌이 스며 있다. 그 쓰임도 이중적이다.

광포한 현실 세계를 직시하지 못하는 유아적인 발상을 비판하는 말로 쓰일 때 그것은 터무니없는 공상을 뜻할 것이나, 비좁은 일상에 청신한 바람을 불러와 색다른 세계를 감각하게 해주는 미적 체험으로 받아들여질 때 그것은 현실의 결핍을 채워주는 꿈의 거울을 뜻할 것이다.

동화 속에는 현실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신비한 세계가 펼쳐진다. 거기엔 뭔가 이뤄질 것 같은 기대감과 더불어 안도와 평화로 귀결되는 최고 이상으로서의 '코스모스' 가 있다.

현실 경험이 아직 충분치 못한 어린이에게 동화의 내용은 선취된 세계로서 한평생 삶의 밑그림으로 자리잡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꼭 필요한 꿈과 믿음의 씨앗을 어린 시절에 동화에서 구하는 것만큼 인생에서 중요한 일도 없다.

동화는 나이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할수록 엄마 품속처럼 따스하다. 아이일 적에 경험하는 엄마 품속은 전 우주와도 같은 것이니 동화의 경험 또한 그러할 것이다.

『여우의 전화박스』(도다 가즈요 글, 다카스 가즈미 그림, 햇살과 나무꾼 옮김, 크레용하우스)는 아이와 엄마 사이에 끼여든 뜻하지 않은 시련을 보이지 않는 힘, 곧 기적으로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기 이외의 존재를 자각케 하고 자기를 둘러싼 세상에 대해 깊은 믿음을 심어주는 동화다.

외딴 산기슭에 낡고 허름한 전화박스가 하나 놓여 있다. 이곳에 저녁마다 병상의 엄마에게 전화를 거는 아이가 나타나고, 일찍 세상을 떠난 아기 여우를 떠올리며 그 모습을 지켜보는 엄마 여우가 있다.

그런데 어느 날 전화박스가 고장난다. 엄마 여우의 눈에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아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윽고 아이가 오는 소리가 들리고…. 순간 엄마 여우도 깜짝 놀랄 기적이 일어난다. 엄마 여우의 몸이 전화박스로 둔갑한 것이다.

아이는 통화에 성공하지만 엄마가 있는 도시로 곧 떠날 예정이고, 고장난 전화박스도 철거될 운명이다. 상심한 엄마 여우는 무심코 전화기를 들어 세상을 뜬 아기 여우와 혼자 대화를 나누는데…. 여기서 엄마 여우도 까맣게 모르는 전화박스의 기적이 한번 더 일어난다.

눈물이 핑 돈다. 소망이 간절하면 하늘이 돕는다고 했던가. 자연과 인간 또는 문명까지도 감싸안는 높은 혼의 세계, 기적의 세계가 오래 잊히지 않을 선명한 인상으로 자리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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