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과 실리, 그 사이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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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사립대학이 교육부에다 기부금 입학을 허용하기 위한 법 제정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교육부는 여기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고 하죠. 사실 이것은 오래 전부터 논란이 있어왔던 문제입니다. 음성적으로는 몇몇 대학에서 행해지기도 했고, 그 때문에 몇 사람은 철창신세를 지기도 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처럼 교육열이 이상적으로 과열된 곳에서는 모두를 만족시키는 제도를 찾기란 불가능합니다. 교육제도에 관해 입을 열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것이죠. 당장 잘못된 교장 선임을 두고 1학년 학부모와 2·3학년 학부모들 사이에서 의견이 어긋난 상문고등학교 사태만 보아도 알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욕을 얻어먹을 각오를 하고서 몇 자 적습니다. 저는 더 나은 교육을 위해 투명하게 사용한다는 전제 하에서, 기부금 입학을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의 어느 글에서 적었듯이 우리는 자원이 거의 없는 땅에서 살고 있습니다. 때때로 생각해보면 이만큼 살고 있는 것이 눈물이 날 정도로 대견하기까지 해요.

어쨌거나 지금까지 우리 경제를 지탱해온 것은 오직 하나 인적 자원이며,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은 교육열입니다. 대학이 상아탑 대신 '우골탑'이라 불려지던 시절이 있었어요. 시골에서 소를 판 돈으로 대학을 다녔기 때문입니다. 그런 지극 정성으로 우리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낮은 문맹률에, 역동적인 인적 자원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열성만으로 교육이 가능하던 시대는 끝이 났습니다. 세계는 정신 없이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우리처럼 자원이 없는 국가는 하루 아침에 폭삭 주저앉을 우려도 있어요.

그런데 새로운 제도에 적응하려면 상당한 투자 재원이 필요합니다. 정보화를 위한 설비 투자, 제대로 된 외국어 교육을 위한 설비와 인적 투자 등등, 대학에서 일반적으로 거두는 등록금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투자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차피 국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와야 합니다. 나라에서 세금으로 대학에 재정지원을 하든, 아니면 대학당국이 등록금을 인상하든.

그런데 지금처럼 부실기업과 금융기관에, 그리고 북한에도 퍼주기 바쁜 우리 정부에 무슨 여유가 있겠습니까? 지금까지도 그러했지만 앞으로도 정부로부터의 지원은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등록금을 올려야하나요? 이론상으론 그렇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은 거의 모든 학기마다 등록금 인상을 반대하고, 심지어는 수업진행도 방해합니다.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저라면 인상 반대 운동 하느라 수업을 거르느니, 돈 더 내고 열심히 수업을 듣겠지만…. 게다가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데 학교 발전기금이 제대로 걷힐 리도 없구요. 어쨌든 우리의 대학이 부실한 재정 문제를 털어 내고 교육에 전념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현실입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 돈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우리 같은 비선진국의 일반적인 현상인데, 개인들은 지나치게 돈이 많죠. 건강한 조세제도가 정착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와 권력이 함께 집중되어 있어, 그 부를 형평의 원리에 맞춰 나누려는 조세제도가 제대로 만들어지기 어려운 것이죠.

그런데 그 부유한 개인들도 자식들의 교육에 대해서만큼은 조바심을 냅니다. 억만금을 써서라도 좋은 학교에 들여보내고 싶어하는 것이 부모들의 마음입니다. 아직까지는 우리나라에서 교육이 한 인간의 자질을 평가하는 최고의 잣대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이 부유한 개인들의 돈을 받아서 더 나은 교육을 펼 수만 있다면 기부금 입학을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물론 그 반대여론에 대해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닙니다. 일반 국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이죠. 그렇지만 부유한 집안의 자식들을 좋은 대학에 입학시키지 않았다고 우리에게 얻어지는 현실적인 이득이란 전혀 없음을 고려해야만 합니다.

우선 그들은 이 땅에서 실패하면 외국으로라도 나갑니다. 그 외국학위와 외국어 실력으로 평범한 집안의 자식들을 다시 주눅들게 할 수도 있습니다. 최소한 그 생활비와 학비만큼은 우리의 부가 국외로 유출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원 외에 기부금 입학을 허용한다고 해서 일반 학생들이 받을 불이익이란 사실 없어요. 오히려 장학금이 늘어나고, 교육 시설이 확충된다면 일반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잠시의 정신적 만족 때문에 현실적 이득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우매한 일일는지도 모릅니다. 명분에 집착하다 실리를 놓친 우리 역사의 많은 대목과 동일한 우매함 말입니다.

저는 그래서 교육부의 엄정한 관리 하에 기부금이 실제로 학교와 학생들을 위해 쓰여질 수만 있다면 최소한의 정원과 기준을 정해 기부금 입학을 허용하는 일이 현명한 처사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당장은 수학능력이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그만한 기부금을 감당할 부유한 집안의 자제들에게 당당함과 자부심을 심어주는 일이 미래를 위한 투자가 아닐는지요?

부를 정당하게 유지하고 늘려나갈 수 있는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 공부 좀 못했다고 콤플렉스를 느끼고 자신이 현실에 대해 좌절하게 만드는 것보다 더욱 바람직한 교육적 자세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부는 동시에 우리들의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중요한 문제는 그것을 얼마나 투명하게 운용해나가느냐는 것이지, 배 아파서 절대로 그렇게는 못 하겠다는 심통이 아닙니다. 위험한 기계론적 평등주의에 사로잡힌 그런 심통은 결국 자신을 향해 돌아오는 부메랑이 될 것이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좀 더 건강한 자본윤리를 배우고, 익히고, 실천할 수 있는 사회환경을 만드는 일, 그것이 최우선의 과제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언제나 배제와 좌절의 아픔보다는 포용과 격려의 따듯함이 더 지혜로운 방법임을 믿습니다.

박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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