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시조새는 진화의 증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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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희준
서울대 교수·화학부

불행인지 다행인지 요즘 우리나라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가 국제적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얼마 전 영국 과학저널 네이처가 한국 과학 교과서에서 진화론의 증거를 삭제한다고 문제를 제기한 데 이어 지난 7월 6일에는 미국 과학저널 사이언스도 “고교 교과서에서 진화론의 두 가지 증거를 삭제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한국 정부가 재심할 것”이라고 밝혔다.

 1861년 독일의 1억5000만 년 전 지층(地層)에서 발견된 시조새 화석은 공룡에서 새로 진화하는 중간 단계 종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한 기독교계 단체에서 이에 대한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교과서 개정 청원서를 제출했고, 대부분 과학 교과서 출판사에서는 시조새나 말 조상의 화석 사진을 삭제하거나 증거라는 표현을 완화하는 식으로 대응했다.

 물론 그렇다고 진화론에 관한 서술 자체를 철회한 것은 아니다. 그뿐 아니라 2009년 개정 과학 교과서는 지구상 생명을 우주 자체 진화의 결과로 가르치고 있다. 우주가 진화한다면 생명의 진화는 당연하다는 입장인 것이다. 네이처나 사이언스는 우리나라 과학 교과과정을 모르고 기사를 쓴 것이 분명하다.

 요즘 또 하나 세계적으로 관심을 끄는 과학적 사건은 힉스 입자의 발견이다. 빅뱅 우주에서 쿼크 같은 기본입자에 질량을 부여하고 사라진 것으로 이론적으로 추측된 힉스 입자가 여러 해 동안 엄청난 예산을 투자하고 노력을 기울인 끝에 거의 발견된 것이다. 우리 주위의 물질세계를 가장 잘 설명하는 이론적 틀을 표준모형이라고 하는데 1995년의 톱 쿼크 발견 이후 힉스 입자는 표준모형에서 발견되지 않은 유일한 입자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힉스 입자는 신의 입자라고도 불렸다.

 진화론 논쟁과 힉스 입자 발견에는 중요한 공통적인 요소가 있다. 과학적 발견의 진위를 가늠하는 ‘증거’가 그것이다. 힉스 입자를 발견하기 위해 양성자 충돌 실험을 수행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아직 확실한 발표를 미루고 있다. 그 이유는 데이터의 확실성을 나타내는 신뢰도가 5시그마로, 입자 발견에서 확실성을 보장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6시그마에는 못 미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5시그마의 경우 신뢰도는 99.99994%다. 일상사에서는 이 정도의 신뢰도라면 더 이상 미루지 않고 수술을 받거나 투자를 결정할 것이다. 이 연구에 참여한 물리학자들도 힉스 입자의 발견을 의심의 여지 없이 받아들이고, 심지어는 83세인 피터 힉스의 올해 노벨상 수상을 점치기도 한다.

 이에 비하면 시조새 화석은 중간 종의 증거라고 보기에는 불충분한 면이 당연히 있을 것이다. 1억5000만 년 전 일을 입자물리 실험처럼 재현할 수도 없고 화석 자료도 불완전할 것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시행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생물학자 중에서 약 70%가 시조새를 공룡과 새의 중간 종으로 볼 수 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생물학계에서는 이 정도의 화석 자료는 진화의 증거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인 것이다. 반면에 화석에 비해 DNA 염기서열을 통해 살펴볼 수 있는 종 사이의 유전적 연관성은 훨씬 확실하고 설득력 있게 진화의 역사를 보여준다.

 과학 교과서에는 과학을 다루어야 한다. 과학은 6시그마의 증거를 추구하는 정직성과 성실성을 기반으로 한다. 정부가 나서서 우주와 생명의 진화를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우리나라 과학 교과과정을 네이처나 사이언스에 알리는 것이 소모적인 과학과 종교의 대립을 마무리하고 효과적으로 일부 단체의 언론 플레이에 대응하는 길이 아닐까 한다.

김희준 서울대 교수·화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