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갈래 길 따라 읽는 세 주인공의 발자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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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 루이 트롱댕의 『세 갈래 길』은 ‘헷갈리는’ 만화다.장면과 장면을 나누는 칸이 없기 때문이다.책을 열면 세명의 주인공의 행보가 세 갈래 길을 따라 펼쳐진다.이들은 각자 다른 길을 가다가 우연히 한 지점에서 만나기도 하고 다시 헤어지기도 한다.세 사람의 각기 다른 스토리를 한꺼번에 따라가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헷갈림’이 여간 재미있지 않다.만화나 영화 모두 칸과 컷에 따라 현재 눈앞에 벌어지는 장면만을 보도록 돼있다.하지만 독자나 관객은 당장 보이는 장면 외에도 같은 시간 다른 공간에서는 다른 사건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고 있다.마치 조감도를 보는 것처럼 ‘종합적인’ 독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매우 독특하다.
세 주인공은 구두쇠 주인 존 맥과 성실한 하인 로베르,빵이 비가 돼 떨어지는 구름을 찾아다니는 소녀 로젤리타,그리고 자신을 만든 아버지를 찾아다니는 기억상실증 환자 로봇 두치오다.강·절벽·이층집·지하세계 등은 적절한 순간에 배치돼 세 주인공들을 책 윗부분에서 아랫부분으로 오르락 내리락하게 하며 독자들을 한시도 지루할 틈 없이 이리저리 몰고 다닌다.
출판사에선 6∼9세용으로 내놨지만 전방위적 구성 때문에 소화하는 데 좀 무리가 있을 듯 싶다.귀엽고 아기자기한 그림체가 눈에 쏙 들어온다.트롱댕은 세계적 권위의 만화 축제인 앙굴렘 만화페스티벌에서 『슬라몽』으로 1994년 감동상(꾸 드 꿰르)을 수상한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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