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사북사건 악몽 당사자들 용서·화해 주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사북사건 당사자들의 30여 년 묵은 갈등을 용서와 화해로 풀어낸 탁경명씨가 그 지난한 과정을 담은 책 『사북사건 33년 만의 화해』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1980년 4월 강원도 정선에서 발생한 ‘사북사건’ 현장에 탁경명(70·춘천시 후평동)씨가 있었다. 그는 당시 중앙일보 기자였다. 탁씨는 사건 주동자가 연행되는 현장을 사진 촬영하다 계엄군에 잡혀 개머리판으로 폭행당하고 고문까지 받았다. 당시 중앙일보는 이 사건을 기사화했으나 계엄사의 보도검열 과정에서 삭제됐다. 공백으로 남겨둔 채 신문은 발행됐다. 이 사건은 당시 언론계에서 일어난 보도검열 철폐운동의 발화점이었다.

그로부터 32년. 탁씨는 사북사건을 현재 진행형으로 대하고 있었다. 갈등이 아니라 ‘용서’와 ‘화해’의 이름으로. 그는 최근 2년간 아무도 나서지 않았던 일을 했다. 사건 가해자와 피해자들을 만나 화해를 주선했다. 그리곤 이 과정을 『사북사건 33년 만의 화해』(도서출판 예맥)라는 책에 담아 냈다.

 - 왜 화해에 나섰나.

 “사북사건은 노·노간 갈등으로 촉발됐다. 또 사건이 진행되면서 이재기 노동조합 지부장 부인 김순이(76)씨에 대한 린치, 노동조합 반대세력이자 사건의 주동자에 대한 관계당국의 인권유린 등 또 다른 갈등도 생겼다. 이런 갈등이 30년이 지나도 그대로 잔존해 있었다. 사북사건 현장에 있던 사람으로, 관련 글을 쓴 언론인으로, 화해를 시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 나름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마음이었다.” 사북사건은 사북광업소 노동조합 지부장 선거 등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조합원 간 갈등이 1년간 지속되다 경찰 지프차에 광부가 치어 다치자 4월 21일 광부들이 정선경찰서 사북지서를 습격하며 사흘 동안 사북이 무법천지가 된 사건이다. 사건은 4월 24일 협상으로 수습됐다. 신군부 등장으로 정국이 살벌하던 때였다.

 - 언제부터 관련자 화해에 나섰나.

 “2010년 가을 무렵부터 사건 관련자에게 간단한 안부 글과 함께 내 방송 원고를 묶은 책을 보냈다. 두 번째 책을 보내니 몇몇 분이 ‘고맙다’는 답을 보내왔다. 지난해 2월부터 전국을 다니며 30여 명을 만나 ‘사북의 악몽을 무덤까지 가져 가야겠느냐’며 설득했다.” 탁씨는 2009년 1월부터 GBN 강원방송에서 3년 동안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 사건 주요 인사와의 화해는 쉽지 않았을 텐데.

 “나부터 화해하려 노력했다. 지난 2월 노동조합 반대세력 핵심인 이원갑(73)씨를 만났다. 내가 2007년 쓴 책에서 ‘사북사태는 민주화 운동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때문이다. 문제는 이씨와 김순이씨와의 화해였다. 6개월 동안 김씨를 설득했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지난 3월 결국 이들은 화해했다. 이씨가 사죄와 용서를 구했고 김씨는 이를 받아들였다.”

 - 화해 과정을 책으로 펴낸 것은.

 “이 땅에 ‘화해문화’가 형성되기를 바라서다. 2010년 말까지 활동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사북사건을 포함해 8500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했지만 화해가 성사된 것은 없다. 사북의 화해를 계기로 화해문화가 생겨 국가와 사회가 통합되기를 기대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