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바꾼 마법의 구호 ‘사이좋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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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달 29일 오전 울산시 북구 매곡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이 손을 들고 ‘멈춰 학교폭력’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매곡초]

“친구와 사이좋게.“

 지난달 29일 오전 9시쯤 울산시 북구 매곡초등학교. ‘딩동댕’ 1교시 수업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38개 교실에서 구호가 터져 나왔다. 학생·교사가 일제히 오른손을 들고 힘차게 구호를 외쳤다.

 개교 6년 된 이 학교에는 지난 3월까지 속칭 ‘노는 아이들’이라는 불량모임이 있었다. 6학년 8명이 주도해 만든 이 모임에는 20여 명의 추종세력까지 있었다. 전교생 1050명의 약 2%도 안 되는 숫자였지만 학생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들은 건물 옥상과 연결된 5층 계단에서 담배를 피우곤 했다. ‘X발’이라는 욕설을 하면서 학생들을 괴롭혔다. 6학년 1반 김모(12)양은 “일진의 얼굴만 보고 무서워 울음을 터트리는 애도 있었다”고 말했다.

 학교에선 나름대로 금연·학교폭력 상담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행했으나 이들의 ‘비행’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지난 4월 19일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학교폭력 실태 조사에서 이 학교는 ‘일진 학교’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말 이 학교 4~6학년 344명(전체 604명)을 대상으로 이뤄진 조사에서 125명(36%)이 ‘일진이 있다’, 69명(20%)은 ‘학교폭력을 당한 적 있다’고 응답했기 때문이다.

 학교 측이 강력한 처방에 나섰다. 4월 23일 교장실에서 교사 46명 전원이 모여 학교폭력 근절을 실행하기로 결의했다. 정동락(61) 교장은 “이래선 안 되겠다는 절박함에서 아이디어를 모아 실천에 나섰다”고 말했다.

 우선 학생들의 인성교육을 위해 ‘친구와 사이좋게’라는 구호를 매일 1교시 수업 전과 점심시간 후 두 차례 외치도록 했다. 또 ‘친구와 잘 지내자’라는 노랫말이 담긴 동요를 매일 오전 9시 큰소리로 부르도록 했다. 같은 반 아이를 칭찬하는 글을 쓰는 ‘칭찬릴레이 게시판’을 교실에 내걸고 글을 많이 쓴 학생에겐 상을 줬다. 2주에 한 번씩 반장과 부반장들이 토론회를 열고 폭력과 욕설이 오간 사례를 놓고 대안을 모색했다. 지난 5월 19일에는 4~6학년 학생 180여명이 피켓을 들고 학교폭력 추방 거리캠페인도 벌였다. 학부모들도 하루 3명씩 조를 짜 매일 교내 순찰한다.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지난달 4일 학교가 4~6학년 551명을 대상으로 학교폭력 무기명 조사를 벌인 결과 교과부 조사 때에 비해 학교폭력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이다. 심외보(55·여) 교감은 “학교폭력 근절활동이 펼쳐지자 불량학생들이 위축되면서 잘못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 학교 분위기를 반전시켰다”고 말했다.

울산=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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