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대학원 5년 동안 한국 신문 번역 … 어느새 ‘한국통’ 됐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11면

아시아재단 한국지부 피터 벡(Peter Beck) 대표는 미국 내 대표적인 ‘한국통’이다. 한국의 정치·외교 문제, 북한과의 관계 등에 대해 정통한 한반도 전문가다. 국내 여러 일간지에 칼럼니스트로 활약할 정도로 한국어 실력도 뛰어나다. 그는 “신문은 한국 사회와 한국말을 배울 수 있는 교과서”라며 “TV로는 얻을 수 없는 심도 깊은 지식을 쌓게 해준다”고 강조했다. 한국인보다 한국에 대해 더 해박한 피터 벡 대표의 신문 활용 방법에 대해 들어봤다.

박형수 기자

피터 벡 대표는 ‘인터넷이나 모바일 기기를 통해 기사를 읽으면 중요한 정보도 흘려 보내게 된다?며 ’종이 신문을 통해 집중력과 사고력을 길러 보라?고 말했다. [김진원 기자]

12살 때부터 신문 배달하며 신문 읽기 습관 길러

피터 벡 대표는 5종의 신문을 정기 구독한다. 국내 일간지는 보수와 진보 색채를 띤 신문과 다소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신문으로 나눠 읽는다. 미국 소식을 접하기 위해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도 구독 중이다. 업무가 바빠 신문을 꼼꼼히 읽을 여유가 없을 때는 한국 뉴스를 영자로 게재한 중앙데일리만 챙겨본다.

 벡 대표의 신문 읽기 습관은 10대부터 시작됐다. 그가 12살 때 가진 첫 번째 직업이 신문 배달이었다.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2~3㎞를 달리며 65가구에 신문을 돌렸다. “신문을 받으면 배달 가방에 넣기 전에 먼저 읽어보는 게 습관이 됐죠. 내가 응원하는 스포츠 팀이 1등을 했는지 찾아보는 게 재미있었어요. 신문 자체가 내 삶의 필수적인 부분이 된 셈이죠.”

 그가 생애 처음 자신의 차를 갖게 된 것도 신문 덕분이다. 2년 동안 신문 배달을 하며 모은 돈을 보태 16살에 폴크스바겐에서 나온 비틀 승용차를 샀다. “우리 집은 중산층 가정이었어요. 하지만 부모님은 내가 원하는 건 스스로 벌어서 사야 한다고 늘 가르쳤죠. 그래서 신문 배달로 받은 월급 120달러를 꼬박꼬박 모아 꼭 갖고 싶었던 차를 살 수 있었죠.”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뒤에는 신문에서 관련 정보를 수집했다. 대학원에 다닐 때는 5년 동안 한국 신문을 영어로 번역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벡 대표는 “신문으로 한국말을 배운 덕분에 시사적인 의미를 내포한 한자어들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같은 용어도 신문을 번역하면서 외웠어요. 한국의 문화와 실생활에 대한 정보를 함께 알 수 있어서 언어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종이 신문 읽어야 세계를 이해하는 사고력 키워

벡 대표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접하는 일이 거의 없다. 종이 신문을 읽고 필요한 정보를 스크랩한 뒤 반복해 읽고 있다. 10살 난 딸 애리에게도 TV나 컴퓨터, 스마트폰 대신 책이나 신문 등 종이 매체를 권한다. “화면을 통해 보고 듣는 정보는 꼭 폭포 같아요. 한쪽 귀로 쏟아져 들어왔다가 곧바로 다른 귀로 빠져 나가버리죠. 종이 매체는 파일에 모아뒀다가 다시 읽으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는 게 장점입니다.”

 그는 특히 어린 학생들이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기기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읽기’라는 작업은 세계를 이해하는 폭을 넓히고 사고력을 키워줍니다. 이를 위해서는 한 가지에 오랫동안 집중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런데 모바일 기기는 읽기 자체에 집중하기가 힘듭니다. 정보가 스쳐 지나가버리고 말죠.”

 작가를 꿈꾸는 딸 애리에게 신문 읽기를 가르친 경험에 대해서도 들려줬다. 8살 때부터 워싱턴포스트에 게재되는 ‘키즈 포스트’ 면을 일주일에 3번 정도 읽게 했다고. 키즈 포스트는 워싱턴포스트와 함께 배달되는 4~8면짜리 어린이 신문이다. 키즈 포스트에 익숙해지자 애리도 신문을 규칙적으로 읽는 습관이 생겼다.

 벡 대표는 “부모는 아이들이 인터넷이나 모바일 기기에 과하게 노출되지 않게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바일 기기를 갖고 있는 사람의 90%는 게임이나 채팅을 해요. 그리고 만화를 읽는 정도죠. 누가 스마트폰으로 진지한 고전이나 필독서를 읽겠습니까. 사고력을 키우고 싶다면 종이책과 종이 신문을 손에서 놓지 말아야 합니다.”

신문 속 인물과 사건 - 애플이 세상을 지배하는 날 우린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부담 없고 친절한 ‘시리’만 찾나요? 고개 들면 친구들이 있답니다

심심이를 아시나요? 심심이는 온라인 메신저에서 대화를 걸면 사람처럼 대답해주는 채팅 애플리케이션입니다. 2002년 서비스를 시작해 올해로 10년을 맞았죠. 기계적인 시스템과 나누는 대화라 다소 무미건조할 것 같다고요? 인터넷에 ‘심심이 어록’이 떠돌 만큼 재미있는 대화가 가능하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에요. ‘여자친구와 만난 지 100일 됐어요. 어떤 이벤트를 하면 좋을까요?’라는 질문을 올리면, 심심이는 이렇게 답변합니다. ‘멋지게 헤어져!’

 20일자 신문에는 심심이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시리’가 소개돼 눈길을 끄네요. 애플사가 아이폰용 음성인식 시스템으로 개발한 시리는 심심이보다 한층 영리하고 철학적입니다. 주인이 시키는 대로 정보를 검색하기도 하고 문자를 대신 보내주는 똑똑한 비서 역할부터, 삶이나 사랑 등 철학적인 주제에 대해 심오한 대화도 나눌 수 있어요. 기사에는 ‘삶이란?’ 질문에 시리가 답한 내용이 소개됐습니다. “그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바로 삶, 인생이 아닐까요”라는 답부터 “삶은 달걀이면 인생은 계란이라고 누군가 말씀해주셨어요”라는 센스 넘치는 답변까지, 시리와 나눌 수 있는 대화 주제는 무궁무진합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기계나 시스템과 주고받는 이야기를 과연 대화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대화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마음을 나누고 생각을 키워가면서 서로에게 더 발전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나에게 고민이 있을 때, 친구나 선생님을 만나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고민도 해결되는 것처럼요. 그저 설명서에 따라 대꾸해주는 심심이나 시리가 이런 새로운 해결방법까지 제안해주는 대화의 상대가 될 수 있을까요. 이 부분에서 고개가 갸웃해지네요.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자꾸 이런 가상 대화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걸까요. 아마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첫째, 시리에게 털어놓은 고민은 새어나갈 염려가 없다. 둘째, 시리는 내가 부를 때면 언제나 친절하게 답해준다. 셋째, 대화를 하기 싫을 때면 부담없이 시리를 외면해도 상관없다.

 사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재미있기도 하지만 참 복잡한 것이기도 하잖아요. 친구에게 말한 나의 비밀이 새어나갈까 전전긍긍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거예요.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하거나,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꺼내보지도 못하고 친구의 이야기만 듣다 돌아선 적도 있을 거고요.

가상의 존재인 시리에게는 인간 관계가 주는 부담감과 귀찮음은 전혀 느낄 필요가 없죠. 대신 내가 필요할 때는 언제나 친절하게 응대해주는 달콤한 존재입니다. 이런 시리에게 익숙해진다면, 사람을 대할 때도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듭니다.

 가족의 규모가 점점 작아지면서 관계에 미숙한 어린이·청소년들이 적지 않은데요. 가족이나 친구보다 이런 가상 프로그램에 의존하는 세상이 오면 인간관계는 더욱 삭막해지지 않을까요. 조금 부담스럽고 귀찮더라도 시리나 심심이 대신, 옆에 있는 부모님과 친구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보세요.

심미향 숭의여대 강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