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옳다 생각하면 괴롭다 … 나와 너 구분 않는게 중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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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 스님

25일 7시 서울 조계사 불교역사문화기념관. 고우(75) 스님의‘백일법문 강좌’두 번째 행사가 열렸다. 성철(1912∼93) 스님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다. ‘백일법문’은 성철 스님이 1967년 해인사에서 행한 법문. 불교의 정수를 담아냈다는 평가다. 고우 스님은 ‘백일법문’에 해박한 선승으로 꼽힌다.

 “오늘 운전해서 서울 한복판에 들어왔는데, 조금도 힘들지 않고 즐거웠습니다.”

 고우 스님은 이날 유쾌한 모습이었다. 스님이 있는 곳은 경북 봉화군 금봉산의 작은 암자인 금봉암. 예전 화전민이 살던 태백산맥 끝자락 깊은 산중이다. 운전을 시작한 지 5년도 안 되는 70대 중반의 노스님이 5시간을 손수 운전해 조계사에 도착했다.

 고우 스님의 강좌는 ‘중도(中道)’에 집중됐다. 평소 성철 스님이 강조했던 중도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상태이자, 깨달은 삶을 향한 지름길이다. 고우 스님에게 중도는 스스로 행해서 느끼는 기쁨이다. 그래서 운전을 중도에 비유 할 수 있는 것이다.

 스님이 객석에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 여기에 뭐 하러 오셨습니까. 여러분 안의 부처를 보면 그만인데요. 그게 중도입니다.”

 예전 성철 스님은 ‘백일법문’에서 중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팔만대장경이라는 노정기(路程記)에 의지하여 실제로 길을 가서 부처가 돼야 합니다. 서울을 가려고 하면서 서울 안내판이나 소개문을 아무리 들여다보고 있어 봤자 서울을 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한 걸음을 걷든지 두 걸음을 걷든지 남대문으로 쑥 들어서야지 그러기 전에는 아무 소용없는 것입니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누구든지 그 손가락 끝을 따라 허공에 있는 달을 보아야 할 것인데 바보는 달은 쳐다보지 아니하고 손가락 끝만 쳐다보고 달이 어디 있느냐고 묻습니다.”

 고우 스님의 풀이는 이랬다. “노정기(안내서)가 알려주려는 핵심은 중도입니다. 자꾸 나만 옳다고 생각하고, 내 욕심을 채우려 하기에 불안하고 괴로워집니다. 나와 너를 구분하지 않는 것이 중도입니다.” 이어 “안내서를 보고 중도를 이해하는 것은 손가락이 지적하는 달을 보는 것이지만, 아직은 달을 알지 못한다. 중도를 체득했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중도를 체득 못했다면, 아무것도 아닌가. 스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노정기를 이해했다면, 이제 조금씩 노력해 보십시오. 화나고 슬프고 욕심날 때마다 생활에 중도를 적용해 보십시오. 처음이 어렵지 점점 재미를 느낄 수 있고, 재미를 느끼면 가속도가 붙습니다.”

 실생활에서 실천해야 진짜 중도라는 설명이다. 스님의 두 시간 넘는 강연을 마무리했다. “한 번에 ‘꽝’하고 터지면 좋겠지요. 그런데 그게 어디 쉽나요. 한 번에 터지지 못하더라도, 그때 그 자리에서 노정기를 꺼내면 즐거워집니다. 100% 다 가지 못하더라도, 가는 만큼 행복해집니다.”

변희욱(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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