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누가 교사의 자존심을 짓밟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강홍준
논설위원

어느 중학교 학생이 최근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면전에서 그를 당황케 하는 호소를 했다. 체벌보다 무서운 것은 선생님의 무관심이니 차라리 때려달라고 하는 말이었단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건 이 학생의 호소대로 그림자 취급을 당하는 일 아닐까. 악플보다 무플이 무섭다고 했던가. “수업시간에 잠을 자도, 밖에 나가도 욕이라도 해주는 선생님조차 없다”는 이 학생의 말이 지금 우리 학교의 일그러진 실상을 드러낸다.

 얼마 전 찾아간 중학교 교실에서도 이런 모습을 접할 수 있었다. 교실 창을 통해 넘겨다본 교실 안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수업시간에 뒷줄 아이들이 앞뒤로 옹기종기 계 모임 하듯 모여 앉아 잡담을 하고 있고, 교사는 그냥 마이크를 목에 걸고, 수업을 진행하는 광경이라니. 이 장관에게 호소하는 학생이나 이런 광경을 본 기자나 일반화할 수 없는 희귀한 사례를 가지고 얘기하고 있는 것일까.

 고교 때 성적이 아주 좋아야 교대와 사범대에 들어가고, 그중에서도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과 같다는 교원임용고시에 합격해야 우리나라에서는 정교사가 될 수 있다. 상대적으로 긴 정년, 상대적으로 넉넉한 연금 혜택 등이 이 직업을 선망의 대상으로 보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안타까운 일은 그런 교사들이 지금 집단 무기력증에 빠져 있는 듯 보인다는 점이다.

 그 배경은 이렇다. 이들이 지금 학교 안팎에서 모욕을 당하고 있고, 이로 인해 심각할 정도로 자존감 상실을 경험하고 있다. 그 결과 ‘나서 봐야 달라질 게 없고, 말해 봐야 입만 아프다’는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에 도달했다.

 가깝게는 학생과 학부모들부터 이들을 모욕한다. 평소 가정에서부터 교사를 업신여기는 학부모들의 모습을 보고 배운 아이들이기에 교사 알기를 한마디로 우습게 안다.

 서울 강남 3구에서도 아파트 값이 가장 비싼 지역의 학교에서 최근 벌어진 일이다. 직업이 대학교수라는 한 학부모가 교사에게 전화를 해 “우리 아이는 학원 끝나고 집에 늦게 오니 집에서 할 수 없는 인성교육을 담임이 시켜 달라”고 말했다. 교사들이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걸핏하면 학원 강사랑 비교당하고, 강사처럼 잘 가르치지 못할 바에 인성교육이라도 잘하라는 얘기인가.

 여기에서 교사란 직업은 칼퇴근에, 남들 없는 방학을 누리는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다면 잠시 관점을 달리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집에 있는 말 안 듣는 골칫덩어리가 무려 30여 명이나 있고, 이들과 매일같이 전쟁을 벌이는 사람이 우리의 교사라는 관점 말이다. 그런 교사에 대해 아이에게 존경심을 보여주지는 못할망정 푼돈이나 쥐여주면 편애나마 살 수 있는 듯 행동하는 학부모 밑에서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웠을까. 이런 아이들이 사회의 정당한 권위에 대해 존경심이나 가질 수 있을까.

 더 어이없는 사람들이 있다. 알고 보면 같은 편이다. 교과부, 교육청 요직에 포진해 있는 장학관, 장학사들이다. 이 사람들의 정책 결정은 많은 교사를 좌절케 한다. 그들도 분명 학생을 가르치는 초년 교사 시절을 보냈으니 학교 사정을 알 텐데 내려보내는 공문은 현장 무시로 일관한다. 학교 교장은 교육청 장학사나 장학관을, 장학관은 교육장을, 교육장은 교육감을 쳐다본다. 소위 전문직이라는 사람들이 OO교대, OO사범대란 줄을 따라 자리를 좇으니 아래에 있는 교사는 눈에나 들어오겠는가.

 스승 존경 운동이라도 벌이자는 얘기는 아니다. 빈발하는 학교폭력의 배경엔 자존감을 상실한 채 집단 무기력증에 빠진 교사들이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학교폭력 대책의 실효성을 고민하고 있다면 그 역할을 대리하는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데 원인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들이 돌부처처럼 돌아앉은 채 학생들의 아우성을 외면하는 끔찍한 일은 상상도 하기 싫다. 교사들의 마음에 입은 자존감 상실이란 상처를 달래주고, 신명나게 일하도록 돕지 않는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둡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