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PC 생기다니...새 세상 열렸어요"

중앙일보

입력

지난 21일 오전 10시 서울 수서동 영구임대 아파트.

"얼마전 집 근처 복지관에서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PC를 갖고 싶었어요.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아버지께 제 소원을 얘기하면서 기도했죠. 그런데 이렇게 빨리 이뤄질 줄은 몰랐어요. "

중고PC를 받아 든 강복순(17.가명)양은 어머니를 안고 눈시울을 적셨다. 11평짜리 임대 아파트에 컴닥터119 직원들이 펜티엄급 중고 PC를 갖고 방문하자 복순이는 깜짝 놀랐다. 컴퓨터 보급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으나 현실이 되리라고는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복순이네는 지난 1994년 미화원인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잃은 후 시련의 연속이었다. 그 충격으로 어머니는 우울증으로 7년간 투병생활을 했다.

복순이는 이달초 수서중을 졸업한 뒤 실업고에 진학하지만 가사 일을 책임지면서 어머니 병간호에 매달리는 시간이 많다.

"사실상 소녀 가장입니다. 복순이는 오랫동안 다른 사람과 접촉 없이 어머니와 단 둘이 살았어요. 그래서 몸과 마음이 불편한 어머니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기도 해요. "

몰래 신청해준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의 곽정미(28)씨는 복순이를 "TV광고에 나오는 강원도 산골 소녀 ''영자'' 같다" 며 "순진무구하다" 고 표현했다.

컴퓨터 설치가 끝나고 화면이 켜지자 복순이는 복지관에서 배운 ''아래아 한글'' 아이콘을 클릭한 뒤 타자 연습을 해 보았다. 아직은 ''독수리 타법'' 으로 자음과 모음 하나 하나를 일일이 치는 정도지만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지었다.

"인터넷 돼요?" (복순) "PC에 랜(Lan)이 있어 인터넷망만 접속하면 되지. " (이병승 컴닥터119 사장) "채팅도 할 수 있어요?" (복순) "우리 나라는 물론 다른 나라 친구들과도 얘기할 수 있어. " (이사장)

신기한 듯 꼬치꼬치 물어보는 복순이는 "TV에서 인터넷 하는 것을 보고 무척 부러웠지만 주변에 얘기도 못했다" 며 "채팅은 정말 재미있어 보였다" 고 털어놓았다.

"장래 희망이오? 유치원 선생님이오. 그러나 당장은 실업고를 졸업해야 돼요. 그래야 직장 생활하면서 야간대학 나와 자격을 얻죠. "

PC를 갖고 싶은 거나, 컴퓨터를 배우는 목적도 다른 친구들처럼 재미 차원이 아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대학 다닐 수 있는 유일한 발판이기 때문이다.

"이반에 주진 컴피타가 우리 지입 제이루 비썬 샐임사리가 돼써요" 라며 잘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힘겹게 잇는 복순이 어머니는 연신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작은 아파트는 PC가 설치되면서 발디딜 틈 없을 만큼 답답해졌지만 복순이나 어머니에겐 어느 세상보다 넓은 공간이 됐다.

컴닥터 직원들은 "복순이가 열심히 공부해 좋은 유치원 선생님이 되면 보답을 하는 것" 이라며 "누군가 인터넷도 무료로 연결해 주었으면 좋겠다" 며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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