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토해낸 러시아 한인 '고난사'

중앙일보

입력

러시아 한인의 유랑사를 다룬 무용작품이 3월4일 문예회관 대극장 무대에 오른다. 서울현대무용단의 '유랑(流浪)' (박명숙 안무).

배경은 1937년 소련의 동쪽 끝 연해주. 어느날 갑자기 떨어진 강제이주 명령에 중앙아시아로 길을 떠나게 된 구 소련 동포들은 추위와 고통을 이겨내고 척박한 땅을 옥토로 일궈낸다.

무용수들은 한민족 현대사의 한 조각인 고려인들의 고난과 역경, 끈질긴 생명력을 무대위에서 그려낸다. '길 위의 나날들' '거친 바람 속에서' '낯선 곳의 아침' '둥지를 잃은 사람들' 등 모두 10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뚜렷한 줄거리를 갖고 있는게 특징이다.

무용수들이 마임수업을 받아 연극적 요소를 가미해 군데군데 대사 없는 연극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또 무용수들의 몸놀림과 배치, 움직임은 원근감이 잘 살려진 '회화' 이기도 하다.

창작활성화 지원금을 받아 초연된 98년 당시 '실험성과 서정성을 동시에 보여준 작품' 이라는 평을 받아 올해 문예진흥원의 우수레퍼토리로 선정됐다.

무용단의 박명숙 예술총감독은 "같은 작품으로 또 다시 지원을 받는다는게 오히려 부담스럽다" 면서 "전반적으로 작품구성을 긴밀하게 다듬고, 3년전 부족했던 부분들을 보완하느라 새 작품을 만드는 것 못지않은 노력을 들였다. " 고 말했다.

박감독은 '그날 새벽(89년)' '고구려의 불꽃(90년)' '황조가(91년)' 등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에미(96년)' 와 '여성 속의 여신(98년)' 에서는 여성 문제를 이야기했다.

특히 치매 노파를 화자로 내세워 정신대에 팔려간 어린 학생과 생계를 위해 몸을 파는 여인들의 강한 생명력을 보여준 작품 '에미' 로 99년 기독교문화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현대무용을 지루하고 어렵게만 여기던 일반 대중들에게 한발짝 다가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후 3시.7시. 02-3143-2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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