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시간탐험 (25) - 세 손가락의 영웅

중앙일보

입력

메이저리그에서 '조막손 투수' 짐 애보트는 감동의 휴먼 드라마로 기억되고 있다.

좌완투수인 애보트의 오른손은 선천적인 기형이었다. 손가락이 전혀 없는 탓에, 평소 그는 글러브를 오른손에 걸어놓고 있었고, 피칭을 할 때면 옆구리에 끼었다가, 공을 던진 후에 다시 왼손으로 옮기는 번거로운 작업을 계속해야만 했다.

그러나 애보트는 이러한 신체적 결함을 극복하고 많은 것을 성취했다.

통산 87승(108패)를 기록했으며, '88 서울 올림픽'에서는 로빈 벤추라(뉴욕 메츠), 티노 마르티네스(뉴욕 양키스) 등과 함께 금메달을 따내기도 했다. 또한 양키스 시절이었던 1993년에는 노히트 노런의 기쁨도 맛봤다.

1903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한 투수가 데뷔전을 치루고 있었다. 우완투수인 그의 오른손에는 놀랍게도 2개의 손가락이 모자랐다.

모데카이 브라운.

'스리 핑거(Three Finger)' 브라운으로 잘 알려진 그는 내셔널리그가 결성되던 1876년 인디애나주 네스빌에서 태어났다.

불운은 7살때 찾아왔다. 삼촌의 농장에 놀러갔다가 사료 절삭기에 손가락을 잃은 것. 검지와 새끼 손가락이었다.

브라운이 프로야구계에 입문한 것은 그가 스물네번째 생일을 보내고 나서의 일이다. 그 전까지 그의 직업은 석탄을 캐는 광부였다. 때문에 동료들은 그를 '마이너(Miner)' 브라운으로 불렀다.

투수에게 있어서 손가락은 정말 중요한 재산이다. 특히 브라운이 활동하던 당시 무소불위의 변화구였던 커브는 손가락이 길수록 더 유리하다. 길기는 커녕 그 수마저 모자랐던 브라운은, 그러나 불가능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눈물겨운 노력 끝에 브라운은 마침내 세 손가락으로 던질 수 있는 커브를 개발해냈다. 그의 커브는 일반적인 커브보다도 더 위력적이었다. 타이 캅이 "내가 상대해본 것 중 가장 어려운 구질"이란 찬사를 보냈던 브라운의 커브는 마치 역회전공과 같은 궤적을 갖고 있었다.

'나만의 커브'를 앞세운 브라운은 시카고 컵스의 최고 전성기(1906-1910) 당시 에이스로 군림했으며, 6년연속 20승 이상을 거두기도 했다. 또한 1906년에 기록한 1.04의 방어율은 빅리그 역사상 단일 시즌 방어율로는 세번째로 낮은 것이다.

훗날 한 시즌에 두자리 승수과 세이브를 동시에 기록한 최초의 투수로 인정받기도 한 브라운은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는 혹사 탓에, 1916년 비교적 짧은 14년간의 현역생활을 마치며, 통산 239승(130패), 271완투경기, 55완봉승, 방어율 2.06의 화려한 기록을 남겼다.

세 손가락의 브라운. 그는 진정한 인간 승리의 표상이자, 위대한 투수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