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 주택보증 출자금 대손처리 놓고 골머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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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체들이 외부 회계감사가 한창인 가운데 대한주택보증의 전신인 주택공제조합 출자금을 고스란히 특별손실로 처리해야 할 상황이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2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주택보증은 지난해말 기준으로 약 1조원의 자본잠식이 예상돼 지난 93년 주택공제조합 설립시 출자한 3조2천500억원을 이번 결산에서 어느 정도 손실로 반영할 것인지를 놓고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건설업계는 대체로 이번 감사에서 적어도 출자금의 50% 이상을 손실로 처리할 전망이어서 산술적으로만 따져도 최소 1조6천억원 이상을 부담해야 할 입장이다.

◆논란원인은 공제조합 부실 = 문제는 주택보증의 부실에서 비롯된다. 주택보증의 전신인 주택공제조합은 지난 93년 건설회사들이 연대보증의 폐단 등을 줄이기 위해 설립한 것으로 회원건설업체들에 대한 무리한 대출보증과 융자 등으로 도산위기에 처했다. 이에 99년 6월 정부와 채권단은 기존 출자자들에 대한 76%의 감자를 단행하고 신규자금을 투입, 자본금 1조4천486억원의 대한주택보증㈜을 설립했다.

올해 유독 건설업체들의 출자금 손실처리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것은 주택보증 설립시 단행된 감자부분을 99년말 기준 결산에서 전혀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건설교통부는 '주택보증의 경영정상화가 이뤄질 경우 교부받은 주식을 처분할 때까지는 당초 취득원가를 유지할 수 있다'는 관련당국의 유권해석을 토대로 건설업체들이 감자손실을 회계에 반영하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을 통보했다.

이는 외환위기 이후 건설경기가 극도로 위축된 상태여서 건설업체들의 부실발생요인을 정부가 어느 정도 용인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됐고 당시 외부회계감사를 맡았던 회계법인들도 이를 받아들이는 분위기여서 출자금 부분을 손실로 반영한 건설업체들은 한 군데도 없었던 것이다.

◆이번 결산서 쟁점화 = 그러나 지난해 주택보증의 재무상태가 더욱 악화되고 작년말 기준으로 약 1조원의 자본잠식이 확실시되면서 회계법인의 태도가 바뀌었다.

특히 최근 분식회계 문제가 불거지면서 회계법인들이 비난의 눈총을 받고 있고 한국부동산신탁 사태 등으로 건설업계에 대한 불신이 깊어짐에 따라 회계법인들이 건설업체들의 주택공제조합 출자분에 대해 이번에는 반드시 손실처리를 하고야 말겠다는 태도로 덤벼들고 있는 것.

이에따라 주총을 앞두고 회계법인의 결산감사에서 '적정' 판정을 받아야만 하는 건설업체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이들의 요구를 일정부분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출자금 손실처리 논란과 관련, 금융감독원과 건교부가 지난 12월과 1월 회신공문을 통해 출자금 손실처리 문제는 오는 3-4월께 신규자금이 투입된 후의 주택보증 재무상태를 고려해 회계처리를 해도 좋다는 취지를 전달했음에도 이번에는 별다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소 1조6천억원 이상 손실처리해야 = 건설업체들이 주택공제조합에 출자한 부분을 이번 결산에서 반영할 경우 건설업체들의 영업실적은 크게 악화되고 자금사정을 옥죄게 된다.

공제조합에 100억원을 출자한 A사의 경우 148억원의 세전 영업이익을 냈지만 출자금 전액을 손실처리할 경우 30억원의 적자가 예상돼 이번에 50억원만을 결손처리해 손익규모를 20억원 규모로 조정하기로 했다.

또 LG건설[06360]은 최근 회계감사에서 공제조합 출자분 215억원을 전액 손실로 처리했으며 삼성물산[00830]은 424억원 가운데 70%에 해당하는 297억원에 대한 대손충담금을 쌓기로 했다.

이밖에 현대건설[00720]이나 현대산업개발[12630], 대림산업[00210] 등 현재 감사를 받고 있는 업체들도 출자금 손실처리 규모를 놓고 회계법인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업계는 개별업체의 규모나 영업실적에 따라 손실처리 비율상의 차이는 있겠지만 적어도 50% 이상은 주식평가손으로 처리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분위기여서 이것만 계산하더라도 1조6천억원 이상을 고스란히 반영해야 한다.

더구나 이번 결산에서 반영이 안된 부분은 내년 결산에 반드시 반영토록 회계법인에서 주장하고 있어 건설업체들은 주택공제조합 출자금 문제로 이래저래 경영상의 압박을 받을 전망이다.(서울=연합뉴스) 류지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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