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다치 미쓰루 원작〈터치 - 등번호 없는 에이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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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뭐니뭐니 해도 야구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야구로 지역이 갈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야구의 팬들이 많다. 야구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자기 고장에 어떤 프로 야구팀이 있는지, 또 어떤 고교야구 팀이 있는지 정도는 알고 있을 정도니 말이다.

프로 야구팀이 갖고 있는 야구장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여름만 되면 더 없이 뜨거운 시선을 받는 구장이 있다. 그곳은 바로 갑자원 야구장. 고교야구의 신이 잠들어 있다고 하는 갑자원의 흙을 한번이라도 밟아보기 위해서 수많은 고교 야구팀들이 매년 여름의 갑자원 고교 야구 대회의 예선에 도전을 한다.

일본 만화계는 그런 고교 야구의 이야기를 수없이 다루어 왔지만, 그 중에서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도 인기가 있는 작가라고 한다면, 단연 아다치 미쓰루가 될 것이다. '아다치는 80년대와 90년대를 야구로 제패했다.'고 이야기하는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아다치 미쓰루의 야구 만화는 대 히트를 쳤다.

그 중에서도 80년대를 제패한 만화, 〈터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터치는 현재 국내에서도 재판이 되고 있는 야구 만화다(대원 출판사. 26권까지). 하지만 오늘은 만화책 쪽이 아니라, 극장 판인 〈터치 - 등번호가 없는 에이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주인공인 우에스기 타츠야는 만능 스포츠맨이지만, 쌍둥이 동생 카츠야의 그늘에 가려서 별로 빛을 발하지 못한다. 한편 카츠야는 1학년이지만 4번 타자에 에이스 투수로서 학교를 갑자원으로 이끌고 갈 인재로서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

그 둘 사이에 언제나 있는 여자 주인공 미나미. 카츠야도 타츠야도 미나미에게 마음이 있었지만, 어느 날 우연히 미나미가 타츠야를 좋아한다고 말하자 타츠야는 복싱부에 들어가 버린다.

그리고 카츠야는 자신의 모교를 지역 예선의 결승전까지 올려놓는다. 그러던 결승전 당일. 야구장으로 가던 길에 카츠야는 교통 사고를 당하여 사망. 그 사실을 안 타츠야는 아무런 말도 없이 마운드로 올라서서 학교를 갑자원으로 이끈다......는 내용이다.

먼저 알아야 할 사실은 이 극장 판의 내용이 만화책의 내용과는 틀리다는 것이다. 만화책에서는 타츠야는 마운드에 올라서지 않는다. 대신 그 다음부터 연습을 시작해서 카츠야를 넘어서는 에이스로서 성장한다...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물론 끝에서는 갑자원에서 우승도 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 애니메이션은 정말 옛날 애니메이션(?)답다. TV판보다 약간 더 깨끗한 화질이 유일한 장점이라고 보면 될 정도. 이 극장판 다음에 나온 TV판 〈터치 2〉보다 화질이 약간 나은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런 옛날 애니메이션이지만, 이 작품이 인기가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만화책에서의 인기를 그대로 끌고 왔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아디치 미쓰루 특유의 시간 끄는 장면이라던가, 풍경만을 계속해서 보여 주는 장면, 그리고 타츠야와 카츠야의 일을 번갈아 가면서 보여주는 장면 등은 옛날 만화답지 않게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특히 고교생의 사랑을 그리면서도 캐릭터의 절제된 감정 표현을 이토록 멋지게 표현할 수 있는 작가는 아디치 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스토리만을 본다면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애니메이션이다. 필자가 이 작품을 처음 본 초등학교 6학년 때. TV를 보면서 눈물이 줄줄 흘렀던 기억이 난다. 특히 죽은 카츠야를 대신해서 타츠야가 마운드로 올라서는 장면이 멋있었기도 했고, 또한 가장 슬픈 장면이기도 했다.
또 타츠야와 카츠야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미나미의 삼각 관계를 잘 들어낸 것도 이 작품의 좋은 점이다. 오랜 친구로 있었기 때문에, 더욱 솔직해지지 못하는 세 사람의 감정을, 아무런 말도 없이 화면에서 스며 나오는 느낌만으로도 스토리를 전달할 수 있었던 보기 드문 작품이다.

비록 옛날 작품이지만, 명작 중의 한편으로서 꼭 꼽고 있는 '터치 - 등번호 없는 에이스'. 요즘 감동을 받을만한 애니메이션이 없다는 사람들에게 꼭 보여주고픈 애니메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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