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빛·공간의 장엄한 하모니 '흙 인상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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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과 빛, 공간이 어울려 빚어내는 장엄함과 아름다움. 유리와 철골로 이뤄진 로댕갤러리가 고대문명의 신전같은 분위기로 바뀌었다. 서울 태평로 로댕갤러리에서 16일 개막돼 4월8일까지 열리고 있는 '흙의 인상'전 때문이다.

중견 도예작가 원경환 홍익대 교수가 흙의 본래 느낌과 성질(물성:物性)을 설치와 도자작품을 통해 깊이있게 보여준다. 흙작업이라고 하면 도자기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원씨는 불이나 가마 때문에 생기는 도자예술의 한계를 탈피해, 새로운 조형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을 끄는 것은 갤러리의 유리벽 전면(9.5×17m)을 뒤덮고 설치된 '대지의 내부'. 유리에 엷게 바른 진흙이 마르면서 갈라진 틈 사이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세월의 지문처럼 갈라진 무늬는 과거의 것이다. 그러나 그 틈을 뚫고 들어오는 빛의 선율에 의해 무늬는 현재도 살아서 작용하고 있다.

철골과 금속기둥, 유리로 이뤄진 현대적인 공간이 마른 진흙으로 인해 고대의 장캬별 현대성을 함께 느끼게 해준다. 진흙과 빛의 조화는 관객을 사색적인 분위기로 이끈다.

유리벽 앞의 80평 공간에는 사각형 기둥(5×0. 6×0. 6m) 18개가 줄지어 선 '흙의 인상' 이 자리잡고 있다. 고대의 토템 기둥이나 신전(神殿)의 열주(列柱)를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열주와 유리벽 설치는 한데 어우러져 고대의 신전이나 외계문명의 알수없는 유적지 같은 공간을 만들어낸다. 진흙의 힘과 아름다움에 대한 경외를 느끼게 하는 미술설치다. 이 작품들을 위해 1백명이 3톤의 점토로 나흘간 설치작업을 했다.

원교수는 1989년 일본 도쿄의 '사가초 엑서비션 스페이스'의 아치형 유리창에 이번과 비슷한 흙 설치작업을 해서 호평을 받았었다. 그는 이같은 흙 설치에 대해 "원료로서 흙의 가공되지 않은 본질적 표정과 물성을 탐구하는 작업" 이라고 설명한다.

그윽한 검은 빛의 도예 소품이나 거기에 쇠·나무를 결합시킨 작품 20여점도 눈길을 끈다. 가마에서 흙을 구울 때 연료인 장작에서 생기는 그을음을 흙에 흡착시켜 검은 빛을 띠게 하는 흑도소성(黑陶燒成) 기법으로만든 작품이다.

토기와 기와 등을 만들 때 썼던 이 기법은 유약 도자기와 달리 흙의 느낌을 그대로 살아있게 해준다. 작가는 홍익대와 일본 쿄토예술대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도조(陶彫. 도예와 조각을 결합한 용어)로 불리는 탈공예적인 경향의 작품들을 만들어왔다.

기간 중 매일 오후 1, 3시 두 차례 전시설명회가, '큐레이터.작가와의 대화'는 24일 오후 2시에 각각 열린다. 22일부터 격주로 목요일 오후 7시에는 음악평론가 장일범씨가 기획하는 음악회가 열린다. 02-2259-7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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