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정주의가 키웠다, 논문 표절 코리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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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의대 이현철 교수팀은 2000년 11월 “천연 인슐린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유사 인슐린을 개발했다”며 세계적인 과학 전문지인 ‘네이처’에 논문을 게재했다. 그러나 2008년 4월 이 교수팀에서 해고된 한 연구원이 논문 조작 의혹을 제기했고 진위 조사에 착수했다. 연세대 측은 당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조사가 끝나면 이 교수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같은 해 8월 ‘네이처’에 논문 철회를 요청했다.

이어 의혹 제기 10개월이 지난 2009년 2월 위원회는 이 교수에 대해 정직 2개월의 징계 처분을 내렸고 그해 4월 논문도 철회됐다. 모든 사태는 그걸로 끝났다. 이 교수는 현재 강단에 서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2006년 동국대 한의대 김철호 교수는 논문 데이터 표절 의혹 때문에 학교 연구윤리위원회에 회부됐다. 김 교수는 곧바로 자진 사퇴한 뒤 성균관대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2009년에도 수십 건의 논문 표절 의혹을 받았다.

한국연구재단이 “김 교수를 모든 국가연구사업으로부터 배제한다”고 선언했지만 김 교수 역시 교수직을 유지하고 있다.

 2005년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 사건 이후 각종 논문 표절 및 조작 논란이 제기된 건 수십 건에 이른다. 그러나 우리 대학은 ‘감싸주기식 징계’로 일관해 재발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초기엔 ‘강력 대처와 엄벌 방침’을 천명하지만 조사위원회→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교원인사위원회 등 3단계에 최소 1년이 걸리는 조사 및 징계 과정을 거치면서 ‘솜방망이 처벌’로 종결되는 게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줄기세포 논문 조작’ 의혹을 사고 있는 서울대 수의대 강수경 교수는 2010년에도 논문 사진 조작으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됐었다. 학교 측은 당시 “단순한 오류였다”는 강 교수의 해명만을 받아들여 경고로 마무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윤리보다 연구 성과를 더 중시하는 학계 분위기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한국과학학술지편집인협의회 황은성(54) 출판윤리위원장은 17일 “대부분 대학은 언론이 나서지 않는 이상 논란을 덮으려는 분위기”라며 “강수경 교수의 경우도 ‘제대로 조사하라’는 비난 여론에 따라 학교가 뒤늦게 나섰던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우희종(수의학) 교수는 “세계적인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들이 잇따라 논란에 휩싸이면서 자칫 한국 학자들의 연구 업적 신뢰가 손상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런 한국 대학의 온정주의적 태도는 해외 대학들의 엄벌주의와 큰 차이가 난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위원회는 2008년 2월 당시 심리학·교육학 교수였던 마도나 컨스턴틴에 대해 “컨스턴틴이 지난 5년간 발표한 논문과 기고문은 표절”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넉 달 뒤인 6월 컬럼비아대는 컨스턴틴 교수를 해고했다.

또 미 하버드대 인지심리학자인 마크 하우저 교수도 2010년 자신의 연구 결과가 문제 있다는 대학 측 조사 결과를 수용하고 올 초 자진 사퇴했다.

하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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