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11% 금리 대출해준단 전화에 서류 보냈다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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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전이 필요해 대부업체를 찾아다니던 A씨는 지난달 한 대출 알선업자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서 보증하는 연 11% 금리의 ‘바꿔드림론’을 주선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금리는 A씨의 신용도로 빌릴 수 있는 대출 금리보다 20%포인트 이상 싸다. 대신 업자는 “바꿔드림론을 신청하려면 기존에 대출을 받고 있어야한다”며 6개월간 자신이 소개한 대부업체로부터 돈을 빌릴 것을 권했다. 6개월만 높은 금리를 지급한 뒤 바꿔드림론으로 갈아타면 결국엔 이득이란 것이었다. A씨는 “결과적으로 대부업체 배만 빌려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미소금융ㆍ햇살론ㆍ바꿔드림론 등 서민금융 상품이 일부 브로커ㆍ사기꾼의 ‘먹잇감’으로 악용되고 있다. 해당 상품의 대출을 중개하고 수수료를 챙기거나, 서류를 위조해 대출을 받게 해주는 식으로 불법행위가 이뤄지고 있다.

1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일부 대출 브로커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나 인터넷ㆍ전화 등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서민금융 상품 알선에 나서고 있다. 문자메시지 등을 보고 연락이 오면 대출 가능 금액과 필요서류 등을 알려주고 불법으로 중개 수수료를 떼가는 식으로 수익을 챙긴다. 바꿔드림론 이용자가 10만명을 돌파하는 등 서민금융 상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런 브로커가 계속 늘고 있는 것으로 금감원은 파악하고 있다.

금감원 김병기 서민금융지원팀장은 “해당 기관에서 ‘중개 수수료가 없다’고 홍보하고 불법 알선 광고를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관련 신고가 꾸준히 들어온다”며 “대출 광고에는 응하지 않는 것이 좋고, 특히 대출 전 보증서 발급비ㆍ공탁금ㆍ선이자 등을 요구하면 사기일 가능성이 크다”고 조언했다.

서민금융 상품이 범죄의 도구로 악용되기도 한다. 부산경찰청은 지난달 대출이 어려운 저신용자ㆍ무직자에게 허위 서류를 만들어 금융회사에서 82억원을 부정 대출받게 하고 수수료 30억 원을 챙긴 혐의로 대출사기단 20명을 적발했다. 이들은 재직증명서ㆍ사업자등록증 등을 위조해 햇살론 등 서민대출을 받도록 했다. 정부기관의 보증을 받는 탓에 금융회사의 서류심사가 상대적으로 허술한 점을 노린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대출받은 500여명 대부분은 원금은 커녕 이자도 제대로 내지 않았으며, 금융회사도 정부기관의 보증을 믿고 대출금 회수에 나서지 않았다.

정부는 의욕적으로 서민대출 지원 확대에 팔을 걷고 있지만 부작용은 이처럼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최근 서민대출 신청요건을 대폭 완화하면서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연체기록이 있어도 바꿔드림론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하고, 기존 고금리 채무 보유기간 요건도 ‘6개월 이상’에서 ‘3개월 이상’으로 단축한 바 있다.

이 때문에 금융회사는 정부를 믿고 대출 심사를 느슨하게 하고, 돈 갚을 의지가 적은 사람이 마구잡이로 돈을 빌리는 사례가 빈발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민금융의 재원이 사실상 세금으로 마련된 점을 감안하면, 이런 부정ㆍ부실대출로 인한 손실은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가게 된다.

물론 고금리 사금융에 시달리는 저소득층을 지원하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주도하는 저금리 서민대출 상품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의 공통적인 견해다. 하지만 도덕적 해이에 따라 마구잡이 대출이 이뤄진다면 가계부실이 증가해 경제에 부담을 줄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세대 김정식 상경대학장은 “국책 자금의 규모를 확대하되, 서민대출이 꼭 필요한 영세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한다”며 “은행의 심사 강화를 유도하고, 불법 대부업자나 브로커를 없애야 혈세 낭비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서민금융 상품= 저소득ㆍ저신용자를 위해 생활안정자금ㆍ창업자금 등을 낮은 금리로 대출해 주는 제도. 정부 재원ㆍ보증으로 지원되는 상품으로는 미소금융ㆍ햇살론ㆍ바꿔드림론이 있다. 서민금융회사에서 맡는 햇살론은 정부가 대출금의 95%를 보증해주며, 미소금융은 '미소금융중앙재단'에서 지원한다. 바꿔드림론은 대부업체 등에서 받았던 고금리 대출을 캠코에서 보증을 서 저금리 은행 대출로 바꿔주는 상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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