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원준 SAP 한국 지사장 “1만 명에게 1만 가지 서비스 해주는 게 탱고 경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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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원준 지사장

‘하나의 가슴, 네 개의 다리로 추는 춤’. 탱고를 흔히 이렇게 말한다. 두 사람이 즉흥적으로 움직이면서도 상대의 마음을 읽어 조화롭고 완성도 높은 동작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렇게 탱고를 추듯 기업 경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독일 소프트웨어 업체 SAP의 형원준(49) 한국 지사장이다.

 최근 『탱고 경영』이란 책까지 낸 그는 이달 초 서울 도곡동 SAP 한국지사 사옥에서 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소비자가 생산에 관여하는 시대”라며 “기업과 소비자가 서로를 리드하고 서로에게 호응하는 경영이 모든 기업에 필요해졌다”고 말했다. 기업이 디스코처럼 혼자 추거나 왈츠처럼 일방적으로 리드해서는 개개인의 취향이 다양해진 시장에 대응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제품을 만들기만 하면 팔리던 1970~80년대는 포드의 ‘푸시(Push)’ 방식이 유효했다. 기업이 어떤 제품을 만들지 결정해서는 시장에 쏟아내는 스타일이다. ‘탱고 경영’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시절에는 고객의 다양성이 무시됐다. 그러다가 소비자의 취향이 중요시된 2000년대 전후에는 삼성의 ‘풀(Pull)’ 방식이 유효해졌다. ‘풀 방식’이란 고객의 요청에 따라, 또 요청한 수량만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재고가 남지 않아 ‘안 팔리는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날 수 있다. 또한 수량이 한정돼 신제품이 나오면 소비자들이 서둘러 사게 만드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형 사장은 “삼성이 1등으로 올라선 데는 제품력도 있지만 풀 방식을 잘 도입해 소비자의 요구에 적절히 대응하면서도 재고를 최소화한 프로세스력이 큰 힘을 발휘했다”고 분석했다. 디지털 기술이 발달한 지금은 풀 방식에서 한 발 더 진전한 ‘탱고 방식’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탱고 경영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마케팅 현장에 바로 적용 가능한 지침”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호텔 객실을 예로 들었다. “벽과 천장에 디지털 디스플레이를 달아서는 단골 고객이 좋아하는 그림을 비춰주고, 또 투숙객이 즐겨 듣는 음악을 트는 식으로 ‘맞춤형 방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고객들은 ‘나만을 위해 꾸며진 공간’이라고 인식하지 않겠는가.”

 백화점 경영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했다. 입구에서 CCTV로 들어오는 고객의 신원을 확인해서는 구매 성향을 데이터베이스(DB)에서 찾아낸 뒤 바로 ‘어느 매장에서 뭘 사면 좋을지, 관심을 둘 만한 신제품은 어떤 것이 나왔는지’ 조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형 사장은 “만인을 위해 만 가지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는 게 탱고 경영”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탱고 경영에 필요한 요소로 3가지를 들었다. 시장과 고객을 즉각 분석하는 ‘리얼타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같은 것을 활용해 소비자를 생산에 참여시키는 ‘감성 접근’, 그리고 창의적 인재들이 다양하게 참여하는 ‘플랫폼’이다. 한마디로 ‘고객을 분석하는 장치를 갖춘 뒤, 실시간으로 욕구를 파악해, 맞춤형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는 기업이 고객과 서로 손을 잡고 어떻게 밀고 당기며 탱고를 추느냐에 따라 업계의 판도와 기업의 순위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형 사장은 미국 카네기멜런대 경영학석사(MBA) 출신으로 삼성전자에서 11년을 근무했다. 삼성에 근무하는 동안 재고를 줄이고 공정을 합리화하는 린(Lean) 생산 방식과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을 도입하는 실무를 맡았다. 싸이월드를 창업했던 형용준(44) 쿠쿠커뮤니케이션 대표이사의 친형이기도 하다.

박태희 기자

플랫폼  단상·무대를 뜻하는 단어이나 정보기술(IT) 분야에서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응용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는 컴퓨터 시스템을 뜻하는 말로 사용된다. 예를 들면 ‘윈도’ 같은 운영체제는 각종 응용 소프트웨어가 실행될 수 있는 플랫폼이다. 탱고 경영에서는 소비자 기호를 파악해 개개인에게 최적화한 상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기업, 소프트웨어 개발자, 고객이 동참할 수 있는 환경이나 시스템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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