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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쇄신안, 문제는 실천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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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불교계를 대표하는 조계종 총무원이 어제 ‘제1차 종단쇄신계획’을 내놓았다. 최근 도박파문 등으로 사회적 비난을 받아온 조계종단이 50년 만의 대혁신을 다짐했다. 쇄신안이 그동안 불교개혁을 위해 필요하다고 지적돼온 주요 개혁방안들을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환영한다. 문제는 실천이다. 훌륭한 쇄신안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대혁신에 반신반의(半信半疑)하는 이유도 그 실천 가능성에 대한 회의 때문이다.

 쇄신안에서 가장 주목되는 대목은 ‘재정 투명화’다. 절집의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뿌리를 캐보면 종국에는 돈으로 귀결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출가자들이 돈에 손을 대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승려들이 국민적 사랑과 존경을 받는 미얀마 등 일부 남방불교처럼 재가자들에게 재정 관련 업무를 모두 맡기자는 것이다.

 쇄신안은 이런 돈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꿀 만한 내용을 담았다. ‘승려는 수행과 포교에 전념하고, 신도는 외호와 보살행 실천을 통한 사회봉사에 힘쓴다’는 대원칙이 분명하다. 구체적으로 사찰예산회계법을 만든다고 한다. 재정업무를 전문종무원에게 맡기고, 사찰운영위원회라는 기구를 통해 심의한다. 이 밖에도 여러 재정 투명화 장치 도입을 약속했다. 사소해 보이지만 민감한 개혁안들이다.

 그대로 실천만 된다면 한국 불교계의 대혁신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개혁 다짐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제대로 실천되지 못한 것은 종단 기득권 세력의 외면 탓이다. 혁신이 가능하자면 조계종단 전체가 승풍(僧風) 혁신의 결의를 다져야 한다. 당장 21일 종단의 입법부인 중앙종회에서 쇄신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이미 상당한 자율권을 가지고 있는 전국 주요 사찰과 문중이 이를 수용해야 한다.

 쇄신의 길은 험난하다. 종단 내부 권력다툼으로 쇄신이 흐지부지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혁신의 방향은 잡혔다. 그 첫걸음은 모든 욕심을 내려놓는 결단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종단 지도자들이 먼저 마음을 비우고, 그로 인해 사부대중의 신뢰를 얻을 때 비로소 쇄신의 추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