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뜻대로 인선 … 보수 색깔 짙어지는 대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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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난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접견실에서 열린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에서 위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양 대법원장은 이날 후보추천위가 추천한 13명의 후보 중 4명을 최종 대법관 후보로 선정해 5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했다. [연합뉴스]

그는 장애인이다.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하다. 판사가 돼서 남들이 서울로 갈 때 부산·울산에 머무르며 재판에만 몰두했다. 판사 생활 29년을 지방에서만 했다. 이른바 ‘향판(지역법관)’이다. 그런 그가 5일 양승태 대법원장에 의해 대법관 최종 후보 4명 중 한 명으로 임명 제청됐다. “다양성의 아이콘이면서도 충분한 재판 능력을 갖췄다”는 이유였다. 김신(55·사법연수원 12기·울산지법원장) 후보자 얘기다.

 김 후보자는 판사 임관 때도 좌절을 겪었다. 소아마비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대법원 고위층이 임관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사가 되기를 원했던 김 후보자의 열망 앞에 법원은 문을 열었다. 동기들보다 5개월 늦은 임용이었다.

 그는 1983년 부산지법 판사로 임관한 뒤 또 다른 ‘선택’을 했다. 부산고법 관내 부산지법·울산지법 등에서만 근무하기로 한 것이다. 이런 그는 법원 내부에선 자연스레 ‘소수자’로 불렸고 실제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권익 보호에 앞장서는 판결을 내려왔다. 2008년 부산고법 재직 당시 “불법 체류 이주노동자가 단속을 피하는 과정에서 다쳤다 하더라도 이를 산업재해로 봐야 한다”는 판결이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 2월엔 4대 강 사업의 핵심 사업인 낙동강 보 설치와 준설이 위법하다는 취지의 최초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부산고법 행정1부 재판장일 때 지역 주민 1789명이 국토해양부 장관 등을 상대로 낸 하천공사 시행계획 취소소송 항소심 판결과 관련해서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취임 이후 줄곧 “외형적 다양성과 사법부의 안정성을 추구하겠다”고 밝혀왔다. 지난해 10월 임명 제청된 ‘싱글맘’ 박보영 대법관이 ‘외형적 다양성’의 상징이었다면 이번에는 김 후보자가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다.

 고영한(57·11기) 후보자는 인선 초기부터 최종 후보 1순위로 꼽혔다. 양 대법원장은 취임 직후 전주지법원장으로 있던 그를 불러 올려 법원행정처 차장을 맡겼다. 강직하고 꼼꼼한 스타일의 그에 대한 믿음이 큰 것으로 알려진다. 고 후보자는 91년 서울고법 재직 시 이른바 ‘통일 국시 사건’으로 기소된 유성환 당시 신민당 의원에 대한 항소심 주심을 맡았다. 유 의원은 86년 국회 본회의에서 “국시(國是)는 반공주의가 아니라 남북 통일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돼 의원직을 상실한 뒤 재판을 받았다. 고 후보자는 심리 끝에 유죄 판결한 1심을 뒤집고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그의 발언은 국회의원 면책특권 대상’이라는 거였다. 이 판결은 근대 사법 백년사 100대 판결 중 하나로 선정됐고 헌법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유일한 검찰 출신 김병화(57·15기·인천지검장) 후보자는 서울대에서 행정법 박사학위를 받은 학구파다. 3배수 추천 후보에 함께 올랐던 안창호 서울고검장, 김홍일 부산고검장을 제치고 검사장에서 대법관이 되는 영예를 안았다.

 김창석(56·13기·법원도서관장) 후보자는 올해 2월 법원도서관장에 임명되기 전까지 25년 넘게 재판 업무에만 종사해 온 정통 법관으로 독일법 전문가다.

 ◆“진보 성향, 여성 전무” 지적=이번 제청은 양 대법원장의 ‘색깔’을 그대로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고위 법관 일색인 데다 진보 성향 인사나 여성 후보자가 없어 인사청문 과정에서 야당의 집중 공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법원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번 추천은 ‘50대 남성, 서울대 법대, 보수 성향’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쉽다”고 말했다.

이동현·채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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