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수준 머무른 미국 패권주의 연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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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을 모으고 있던 주제의 신간을 발견할 땐 잠시 '즐거운 긴장' 을 갖게 된다. 주목받는 소장 정치학자인 이삼성 교수(가톨릭대학교)의 신간 『세계와 미국』(한길사.3만원)도 그런 유의 책이다.

지난 연초에 '행복한 책읽기' (본지 1월 6일자 34면)에서 21세기 벽두에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화두로 미국의 헤게모니에 관한 문제를 이미 제기한 바 있다. 미국의 전략가 브레진스키의 『거대한 체스판』(삼인)을 통해 '미국의 초국가적 패권이 새로운 천년에도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를 살펴본 것이다.

초강대국 미국의 노회한 현실외교전문가와 '체스판의 말(馬)' 에 불과한 약소국의 신예 외교학자가 같은 주제를 놓고 벌이는 한판 대결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이교수는 깔끔하고 정연한 문체로 브레진스키의 주장을 비판한다. 그 이론이 현실화했을 때의 극단적 긴장 상황의 예를 들면서 앞으로 또 전개될 수 있는 군비확장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미국의 세계전략에 대한 해설일 수는 있지만, 기자의 기대와는 거리가 있는 대답이었다.

브레진스키는 책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위해 "속방간의 결탁을 방지하고, 조공국을 계속 순응적 피보호국으로 남아 있게 만들자" 고 고대 제국의 용어까지 구사하고 있는 마당에 "제3세계 민중의 고통은 들리지않는가" 라는 이교수의 한탄은 '변방의 칭얼거림' 에 불과할 수 있다.

이교수도 지적했듯이 브레진스키와 같은 현실적 전략가에게 "자기성찰적 사유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 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교수가 '공동번영을 위한 전지구적 노력' 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세계의 비정부기구나 평화운동가의 대열에 우리 정부가 어깨 걸고 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교수의 지적처럼 브레진스키의 현실적으로 오싹한 주장에 '우리 지식인들이 은연중 압도당하는' 우려를 씻어내기 위해서라도 그를 뛰어넘는 우리의 현실적 대응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교수의 책은 '애써 쓴 책' 임이 분명하되, 우리 사회가 원하는 노작(勞作)은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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