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사람] '술과 아내 그리고 예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산문집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아류 책들이 쏟아지지만, 예술종합대 이강숙(65.사진) 총장의 〈술과 아내, 그리고 예술〉(창작과 비평사, 8천원)은 다소 다르다.

서투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빼어난 글솜씨도 분명 아니다. 그러면서도 사람 냄새가 글에 배어 있고, 예술에 대한 어떤 진정성이 묻어난다.

이 말은 분명 상찬(賞讚)이다. 그리고 글을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다. 즉 세련됐으나 닳고 닳아 감동이 빠져버린 많은 글들이 얼마나 흔한가. 알고보니 그는 왕년의 문학청년이었다.

그걸 고백한 글이 여럿인데 「불가사의한 존재들」이란 산문의 경우 '현대문학' '사상계' 등에 무수한 투고와 퇴짜 끝에 절망감에 빠졌던 청년시절 고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참담한 실패 끝에 음악을 업으로 삼고 있는 지금도 글쓰는 이에 대한 존경은 그 때문이란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시인 황지우와 첫 인사를 나눌 때 그의 문명(文名)앞에 '가슴이 울렁울렁했다' 는 고백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요즘 세상에 글에 대한 수줍은 순정을 보인 글로도 이 산문집은 다분히 예외적이라는 판단이 든다.

그래서 「명동, 음악과 문학, 그리고 술」이라는 글에서 1950년대 명동의 술집 '은성' 과 다방 '청동' 을 어정거리며 명동백작 이봉구, 공초 오상순 등에게 습작시를 바치며 한수 배우려 했던 옛 기억도 근사하게 읽힌다.

그나저나 이 산문으로 보건대 아직도 '환갑 넘긴 문학청년' 이 분명한 이총장은 단단히 '출세' 를 했다. 그토록 원했던 버젓한 산문집을 펴냈기 때문이다.

또 책 뒷표지에는 시인 황지우로부터 '축사' 까지 받아내는 겹경사까지 얻었다. 황지우는 '원로답지 않게 글이 발랄하다' 며 깍듯한 '주례사' 를 올렸다. 음악하는 이로 최근 좋은 글을 쓴다른 예로는 얼핏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의 '깊은 밤, 그 가야금소리'(풀빛, 1994)가 떠오른다.

이강숙 지음/ 창작과비평사/ 8천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