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국 건설 거인의 일대기 그린 '정복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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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로스의 시를 좋아해 원정 때면 그 시집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는 알렉산더 대왕(BC 356~323). 약관의 나이에 마케도니아 왕위에 올라 서른세살에 요절하기까지 그는 그리스.페르시아.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한 고대사의 거인이다.

영국 출신의 역사학자이자 작가인 메리 레널트가 그려낸 『정복자Ⅰ』(Fire from Heaven)은 알렉산더에 관한 여러 저술 중 그를 가장 효과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꼽힌다.

평생 그리스 연구에 천착해온 레널트는 특히 알렉산더에 대한 애정이 깊어 역사서에 남아 있는 그의 궤적을 샅샅이 뒤져온 인물이다.

성급한 주장일 수 있지만 소설 속 내용을 읽기도 전에 그녀가 써내린 머리말을 읽고 나면 작가에 대한 신뢰도는 엄청난 폭으로 넓어진다.

왜냐하면 여느 작가들처럼 소설 속 사실들이 '무작정' 진짜라고 우기기보다 차근차근 열거한 근거들이 상당한 사실감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알렉산더에 대한 동시대의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레널트가 3~4세기 이후의 사료들로 조합한 알렉산더의 모습은 온전한 서술의 차원을 넘어 문학적 성찬의 단계로 훌쩍 달아난다. 해서 신화와 상상, 그리고 현실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의 글쓰기는 마치 제대로 된 팬터지 소설 한편을 대하는 착각을 일으키게 할 정도다.

소년 알렉산더가 아버지 필리포스2세와 어머니 올림피아스간의 불화, 그리스와 마케도니아간의 팽팽한 대립 속에서 심한 좌절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정체성과 야망을 키워 나가는 과정이 이야기의 근간. 그 속엔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을 뛰어넘는 실천적 행동이 나오는가 하면 동성애자로 알려질 만큼 독특한 그의 성격도 함께 읽을 수 있다.

아마도 책장을 넘기던 독자들은 헬레니즘 문화를 잉태시킨 알렉산더의 인간적인 면모와 문화 정복자로서의 인류사적인 의미라는 두마리 토끼를 손에 넣을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난세에 펼쳐보이는 영웅의 행보를 추적하다 보면 복잡하고 어려운 이 시대를 헤쳐나가는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보너스가 아닐까.

이번에 나온 책은 전체 9권 중 첫번째 것이며 올 3월까지 두권이 더 나온다. 출판사측은 "2003년까지 모두 6권을 더 번역해 낼 것" 이라고 말했다.

메리 레놀트 지음/ 강현석 옮김/ 사피엔티아/ 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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