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계 "세금 내게 해주오"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7천4백59억원의 '장부상' 적자를 낸 국내 해운업계가 2일 "세금을 내고 싶으니 회계기준을 바꿔달라" 고 정부에 요구했다.

7천6백60억원의 경상손실이 발생한 대한항공도 지난달 비슷한 내용의 건의문을 한국항공진흥협회에 보냈다.

한국선주협회의 양홍근 차장은 "지난해 국내 36개 외항선사들은 1조1천억원(추정)의 영업이익을 내는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으나 장부상으로 7천억원이 넘는 적자를 내 법인세 조차 못낼 형편" 이라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외화 부채와 환율 변덕 때문. 항공.해운업체들은 한꺼번에 큰 돈이 들어가는 비행기나 선박을 살 때, 10% 정도만 자기 돈을 내고 나머지는 국내외 금융기관에서 빌리는 게 보통이다.

이 때문에 국내 해운업계는 77억달러의 외화 순부채(외화부채-외화자산)를 안고 있어 환율 변동에 따라 손익이 들쭉날쭉하게 마련이다.

해운업계의 경우 지난해 연말의 원-달러 환율(1천2백59.70원)이 1년 전보다 1백14.30원이나 올라 8천8백억원의 환차손을 보았다. 대한항공이 본 환차손은 3천1백억원이나 된다.

선주협회 관계자는 "환차손을 그대로 반영하면 해운업계의 부채비율이 평균 4백82%(지난해 4백2%)로 올라가 신용등급을 받거나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릴 때 어려움이 많다" 고 호소했다.

그러나 한국회계연구원의 권성수 회계사는 "회계기준 변경보다 환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개발하는 게 급선무" 라고 밝혔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 때도 항공.해운업계의 요구로 환율변동에 따른 당기 손익을 여러 해에 걸쳐 이연시킬 수 있도록 회계방식을 바꾸었다가 1년 만에 대규모 흑자가 나는 바람에 회계기준을 원래대로 고쳤다" 며 "현재의 미국식 회계방식이 국제기준인 만큼 개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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