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시간탐험 (23) - 공 하나에 무너진 인생

중앙일보

입력

쭉쭉 뻗은 타구가 좌측담장을 넘자, 마운드의 도니 무어는 고개를 떨구었다.

데이브 핸더슨과 레드삭스의 선수들이 서로 얼싸안으며 기쁨을 공유하는 사이, 무어의 마음 한편은 한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보스턴 레드삭스와 캘리포니아 에인절스(현 애너하임 에인절스)가 맞붙은 1986년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4차전까지 3승1패로 앞서 있던 에인절스는 5차전에서도 9회 2아웃까지 5-2로 앞서며 통산 세번째 월드시리즈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완투승이 기대됐던 애너하임의 선발투수 마이크 위트가 돈 베일러(현 시카고 컵스 감독)에게 2점홈런을 허용하자 상황은 급변했다. 위트를 구원한 게리 루카스마저 몸에 맞는 공을 허용하자, 진 머치 감독은 아껴뒀던 주전마무리 무어를 올렸다.

그 해 4승5패 21세이브 방어율 2.97의 안정적인 성적을 기록했던 무어는 데이브 핸더슨을 맞아 초구와 2구 모두를 스트라이크로 꽂았다. 그야말로 공 하나면 모든 것이 끝나는 순간.

무어는 우타자인 핸더슨의 바깥쪽으로 회심의 커브를 던졌다. 하지만 커브의 각은 밋밋했고 핸더슨의 방망이는 날카롭게 돌아갔다. 6-5 대역전.

에인절스는 9회말 공격에서 다시 동점을 만들었으나, 이미 무너진 무어의 자신감은 다시 회복되지 않았다. 11회초 무어는 핸더슨에게 다시 결승 희생플라이를 허용했고, 경기는 7-6 레드삭스의 승리로 끝났다.

다 이겼던 경기를 놓친 에인절스는 나머지 2경기를 모두 패했고 결국 월드시리즈행 티켓은 레드삭스의 손으로 넘어갔다.

이후 연속된 부상과 함께 자신감 부족에 시달렸던 무어는 1988시즌이 끝나자 팀에서 방출됐다. 그리고 마이너리그 팀에서도 쫓겨난 89년의 어느날, 그는 서른다섯의 나이로 자살을 하고 말았다.

생전에 무어는 "팬들에게 나는 그 공 하나로만 기억될 것"이란 말을 자주 되뇌였다고 했다. 그러나 무어를 마이크 토레즈가 아닌 랄프 브랑카의 길로 인도한 것은 팬들이 아닌 바로 그 자신이었다.

※ 마이크 토레즈는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이었던 1978년, 뉴욕 양키스와의 타이브레이크에서 그 해 홈런을 4개밖에 치지 못했던 버키 덴트에게 결승 3점홈런을 허용했다.

레드삭스 팬들의 야유는 이듬해에도, 또 그 이듬해에도 계속됐지만 토레즈는 이에 좌절하지 않았고, 8시즌동안 71승을 추가하며 1984년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반면 1951년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뉴욕 자이언츠의 바비 톰슨에게 '세계로 울려퍼진 한 방(The shot heard round the world)'을 허용했던 브루클린 다저스의 투수 랄프 브랑카는 이후 맥없는 8시즌을 보낸채 1956년 쓸쓸히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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