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 멀쩡한 사람도 고금리 내몰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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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삼 가게를 운영하던 윤모(46)씨는 올 1월 신용회복위원회에 채무조정을 신청했다. 은행·카드·캐피털·대부업체 등 9개 금융회사에서 빌린 대출금 3500여만원을 갚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윤씨는 몇 년 전만 해도 은행 거래만 하던 ‘금융 중산층’이었다. 하지만 잠깐의 매출부진을 견디기 위해 카드론을 빌린 게 화근이 됐다. 장사에서 남는 돈으론 연 19% 이자를 감당하기 벅찼다. 결국 그는 연 28%짜리 캐피털과 연 39%짜리 대부업체 대출로 ‘돌려막기’를 하다 채무불이행(신용불량) 상태에 빠졌다. 신복위 관계자는 “금방 갚을 요량으로 제2금융권 대출을 받았다가 이자를 갚지 못해 채무조정을 신청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가계대출의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2년 새 금리가 10%를 넘는 제2금융권의 고금리 신용대출이 42% 급증했다. 은행들이 주로 내주는 주택담보대출 증가율(17%)의 두 배 이상이다. 같은 기간 중 은행 신용대출은 제자리를 맴돌았다. 담보로 내놓을 집이 없거나 신용이 부족한 하위 중산층과 서민이 고금리 대출로 몰린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본지가 금융위원회와 각 금융권 자료를 토대로 전 금융권의 대출금리 분포를 처음 조사한 결과에 따른 것이다. 조사에 따르면 상호금융을 포함한 은행권의 신규 신용대출은 2009년 50조7000억원에서 지난해 52조9000억원으로 2조2000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면에 저축은행과 카드·대부업 등 제2금융권의 신용대출은 38조8000억원에서 56조1000억원으로 17조3000억원 급증했다. 이 기간 중 금융권이 늘린 신용대출(19조5000억원)의 89%가 제2금융권 고금리 대출이라는 얘기다.

 이에 따라 2009년 전체 금융권 신용대출의 43.9%이던 제2금융권 비중이 지난해 절반을 넘어섰다. 체감경기가 장기 침체를 겪고 있는 가운데 리스크 관리를 강화한 은행이 문턱을 높인 게 주된 이유로 분석된다. 은행에서 밀려난 중산층·서민의 금리 부담은 급격히 늘어났다.

 대출이 특정 금리대에 몰리는 ‘금리 단층’ 현상도 강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대출금리가 10% 미만인 은행을 벗어나면 10%대 중·후반으로 대출금리가 뛰어오르고, 20%대 중반 금리로 대출을 제공하는 카드·캐피털을 벗어나면 30%대 후반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식이다. 지난 2년간 대출이 많이 늘어난 금리대도 이 구간에 집중돼 있다. 이 결과 은행권을 벗어나면 고금리 대출에 매여 원금과 이자를 갚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지는 이들이 늘고 있다. 개인신용평가회사인 코리아크레디트뷰로(KCB)에 따르면 3곳 이상의 금융사에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은 2009년 말 117만5000명에서 지난해 말 177만5000명으로 60만 명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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