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날지 않는 통일구, 잘만 날리는 이대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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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뜨거운 5월을 보내고 있는 이대호(30·오릭스)에게 날지 않는 ‘통일구’는 잘 날아가는 ‘홈런볼’일 뿐이다.

 이대호는 22일 한신과의 홈경기에서 시즌 8호 홈런을 때려내며 3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했다. 22일 현재 5월 15경기에서 3할6리(62타수 19안타)의 타율에 홈런 6개를 터뜨리는 상승세다. 4월까지만 해도 2할3푼3리에 홈런 2개만 기록하며 일본 무대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게 아니냐는 우려를 샀던 이대호. 그러나 5월 들어 ‘조선의 4번타자’라는 별명답게 가공할 장타력을 뽐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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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

 이대호의 장타 퍼레이드는 최근 일본 프로야구에서 공인구 교체로 인해 장타력 감소가 뚜렷한 추세와 대비되며 더욱 빛나고 있다. 일본야구기구(NPB)는 2011 시즌부터 미즈노사의 ‘통일구’만 유일한 공인구로 사용하고 있다. 국제대회에서 많이 쓰는 미국 롤링스사의 공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롤링스사의 공은 기존에 일본 프로야구에서 쓰던 공보다 반발력이 낮다. 2010년까지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미즈노를 비롯한 총 8개 회사의 공인구를 구단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했기 때문에 반발력이 제각각이었다.

 그러나 새 공인구가 도입되자마자 ‘극심한 투고타저’라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2010년 경기당 평균 1.86개였던 홈런이 지난해 1.09개로 뚝 떨어졌고, 올해는 0.84개(22일 현재)까지 내려갔다. 특히 올 시즌엔 영봉패가 4경기 중 한 번꼴로 나와 타격전이 아예 실종됐다. 반면 우리나라는 중량과 반발계수를 오차범위 내로 지키는 선에서 정해진 회사의 공인구를 구단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달 일본 프로야구 선수회는 통일구 사용의 재검토를 공식 요구했다. 올해까지 2년간 사용하기로 계약된 공인구를 시즌 중간에 교체해야 한다는 요지였다. NPB 측에서도 논란이 커지자 지난 14일 실행위원회를 열어 공인구의 사용여부를 논의했다. NPB는 논의 결과 ‘통일구와 투고타저 현상의 상관관계를 검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통일구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올 시즌 뒤 공인구 재계약을 해야 하는 시점에서 어떤 공을 쓸지는 결정되지 않아 논란의 불씨는 남아있다.

 이 와중에 이대호는 연일 ‘날지 않는’ 통일구를 담장 너머로 날려보내고 있다. 자신만큼은 어떤 공을 써도 상관없다는 듯 장타 가뭄에 시달리는 일본 선수들과 정반대의 홈런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퍼시픽리그의 홈런 1위 윌리 모 페냐(소프트뱅크·9개)에 1개 차로 접근한 홈런랭킹 2위다.

 김정준 SBS ESPN 해설위원은 “이대호가 예전의 스윙을 되찾으며 자신감도 얻었다. 일본 무대에 완전히 적응하면서 잘 안 날아갈 것이라 예상한 통일구를 때려 홈런을 만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광권 SBS ESPN 해설위원도 “이대호가 장점인 선구안을 회복하면서 스윙도 간결해지고 있다. 스트라이크 존과 공인구에 적응하면서 실투를 잘 놓치지 않는다. 20~25개의 홈런은 충분히 쳐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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