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소의 최시중, 판사도 검사도 모르는 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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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중

“전에도 구속집행정지 심리를 해봤지만 집행정지 결정이 나기 전에 병원에 가는 건 이례적이죠.”(판사)

 “구치소 측에서 보고나 협의 없이 자체적으로 결정하고 사후 통보를 하는 것이라 저희도 월요일(21일) 오후에 알았습니다. 재판부에서 당황했다고 하시니 송구합니다.”(검사)

 “전문심리위원들의 의견을 듣고 피고인의 건강을 파악한 뒤 수술이 필요한지 결정하려 했는데….”(판사)

 23일 서울중앙지법 425호 법정. 최시중(74) 전 방송통신위원장의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위한 심문을 맡은 정선재(47)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당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최 전 위원장이 구속집행정지 결정이 나기도 전에 이미 구치소에서 나와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다. 최 전 위원장은 파이시티 인허가 청탁 과정에서 8억원을 받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로 구속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이다. 최 전 위원장 측은 최근 병원 수술이 잡혔다는 이유로 구속집행정지 신청을 냈고 이날이 심문기일이었다. 그런데 심문 시각에 법정이 아닌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법무부와 서울구치소(소장 정유철) 측에 따르면 최 전 위원장은 21일 오전 11시 삼성의료원에 입원했다. 23일로 예정돼 있었던 복부대동맥류 수술을 받기 위해서였다. “밖에서 수술해야 한다”는 구치소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구치소장이 외부진료를 결정한 것이다. ‘구치소장은 수용자에 대한 적절한 치료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교정시설 밖에 있는 의료시설에서 진료를 받게 할 수 있다’는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37조가 근거였다.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최 전 위원장의 변호인은 입원 두 시간 전인 오전 9시에 법원에 구속집행정지 신청을 했다고 한다. 법원도 입원 사실을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해당 재판부는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위한 심리기일을 23일로 결정하고 22일 오전 구치소 측에 최 전 위원장에 대한 소환통보를 했다. 소환통보를 받은 구치소 측은 “최 전 위원장은 이미 나가 있다”고 알렸다. 그러자 해당 재판부는 “본인 수술을 위한 구속집행정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라 당사자의 얘기를 들어봐야 한다고 판단했는데 이미 입원했다는 소식을 하루 전에 들었다”며 황당해 했다.

 구속집행정지를 신청한 피고인이 법원의 심리에 앞서 구치소장의 판단으로 병원에 입원한 것을 두고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더욱이 최 전 위원장은 구속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변호사가 잘 모르고 구속집행정지 신청을 내면서 빚어진 해프닝일 수도 있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최 전 위원장이 아니었다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생각하니 씁쓸하다”고 말했다.

 결국 이날 심문은 당사자 없이 진행됐다. 해당 재판부는 심문내용과 수술경과 등을 종합해 수일 내 집행정지 여부를 결정하고, 집행정지결정 시 기간도 함께 결정키로 했다.

채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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