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은행 계좌수수료제 뿌리 내리려나

중앙일보

입력

"통장 새로 만들려고 왔는데요. "
"손님,돈이 부족한데요. 올해부터 저희 은행에서 새로 통장을 만들려면 초입금(初入金)5만원이 필요합니다."
"초입금이 뭡니까. "
"통장을 개설하면서 5만원은 입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돈이 부족한데…. 통장 하나 만드는데 왜 5만원이 필요하지요. "
"개설만 하고 이용하지 않는 계좌에서 잠자는 돈이 한해 1천6백억원이나 됩니다.
이것을 줄이면 손님들도 이익이고 은행도 관리비용을 줄일 수 있어 좋잖아요. 그래서 초입금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또 월평균 잔액이 10만원이 안되면 월 2천원의 계좌유지 수수료를 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만두세요. "

15일 오전 제일은행 서울 돈암동지점. 입사시험에 합격한 뒤 급여통장을 만들기 위해 집 근처 은행을 찾은 이상수(28)씨는 창구 직원과 이런 승강이를 벌이다 다른 은행으로 발길을 돌렸다. 李씨는 "처음 통장을 만들 때 5만원씩 들고 가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 며 "급여통장의 경우 돈이 들어오면 바로 뺄텐데 통장을 만들면 오히려 손해 아니냐" 고 말했다.

제일은행이 올해부터 신규 고객을 대상으로 시행 중인 계좌유지 수수료와 초입금 제도의 정착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제일은행 구병철 수신상품팀장은 "은행에 전혀 이익을 주지 않는 계좌가 전체의 70%" 라며 "현재 인원과 수익구조로는 모든 고객에게 질높은 서비스를 할 수 없다" 고 제도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외국은행에선 창구 입출금에도 수수료를 부과하는 관행이 이미 정착돼 있다" 고 강조했다.

국내에서 이 제도를 처음 도입한 제일은행도 '서비스는 공짜' 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라서 제대로 정착할 수 있을지 우려하고 있다.

은행 관계자는 "신규계좌 가입실적에 대한 통계는 내지 않았다" 면서 "65세 이상 노인과 미성년자.장애인.인터넷 뱅킹 이용자에 대해서는 수수료를 면제하는 만큼 고객의 불편은 크지 않을 것" 이라고 주장했다.

서울 명동지점 신규개설 창구 담당자도 "하루 10개 정도의 신규 계좌를 만드는데 올들어 지금까지 다섯명이 5만원이 없다며 돌아갔다" 며 "계좌유지 수수료에 대해서도 취지를 설명하면 대부분 수긍하는 편"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인터넷 제일은행 홈페이지에는 "공적자금을 받은 은행이 서민을 외면하겠다는 것인가" "돈 관리에 비용이 들어간다면 많이 예금한 사람에게 받아야 한다" 는 등의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

다른 은행들은 제일은행의 시도를 지켜보고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입출금 한번에 1천5백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가는데 은행 수익에 마이너스인 고객이 많다" 며 "시간이 문제지만 다른 은행도 결국 따라갈 것"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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