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황제병서 벗어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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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남민우
벤처기업협회장
(다산네트웍스 대표)

전문 경영인과 창업가의 차이와 장단점은 많은 경영학자가 다루어 온 주제다. 잘 갖춰진 기존의 조직 속에서 성장한 전문 경영인과 무에서 유를 창출한 창업가 사이에는 문화적 차이가 작지 않을 것이다. 지난해 말 판교 테크노밸리에 입주하는 회사 대표들과 함께 개별 사옥을 공동으로 설계·건축하고 입주할 때까지 성공한 코스닥기업 창업가인 7명의 회사 대표들이 매달 한 번씩 회의를 했다. 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의견 충돌이 있었고 각 회사의 의견에 따라 결정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2년 동안 서로 얼굴 붉혀가며 싸우기도 하고 사이좋게 합의하기도 하면서 창업가들에 대해 절실하게 느낀 점이 많았다.

 7명의 창업가 모두 자기 주장이 강하고 고집이 세다는 점은 예외 없이 똑같았다. 얼마나 막무가내인지 또는 논리적인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주관이 뚜렷하고 자신의 의견을 남에게 강요하는 특징은 너 나 할 것 없이 같았다. 한편으로는 그런 고집이 있으니까 창업으로 시작해 코스닥 상장까지 회사를 성장시키는 성공을 일궈 왔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에는 모두가 상대에 대해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나’ 하는 심정으로 갑론을박을 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대의 취향과 방식을 이해하게 되면서 서로 타협하는 지혜도 쌓아가며 좋은 경험을 나눌 수 있었다. 또한 상대방을 바라보면서 ‘나도 다른 사람들 눈에는 저렇게 강하게 보이겠구나’ 하는 깨달음도 얻게 됐다. 그 이후부터는 가급적 나의 생각을 부드럽게, 혹은 에둘러 표현하는 방법을 터득해 보려고 노력을 하고 있지만 생각만큼 잘돼 가는 것 같지는 않다.

 이러한 창업가의 공통적인 성향을 보면서 전문 경영인 가운데 창업가만큼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많을까 생각해 봤다. 잘 짜여진 조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화단결과 소통의 미덕이 가장 중요한 평가 요소고, 독주(獨走)는 지양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별한 오너의 발탁에 의해 최고경영자의 위치에 단번에 오른 경우가 아니라면 지나치게 강한 자기 주장은 부서 간 협조 부재와 상하간 소통의 부재로 이어져 몰락의 길로 들어서기 십상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창업가의 고집’이라는 이미지에 대응하는 전문 경영인의 이미지는 ‘합리적인 타협’으로 보인다.

 이 지점에서 창업가와 전문 경영인이 잘할 수 있는 분야가 나뉘는 것 같다. 성숙기에 들어간 조직과 사업을 관리하는 것은 합리적인 전문 경영인이 더 잘할 수 있고, 새로운 사업을 발굴해내는 일은 창업가의 몫으로 보인다. 만일 창업가가 합리적인 자세로 진화하고, 전문 경영인이 창업가처럼 강한 추진력을 겸비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하지만 자신만의 경험과 잣대로 서로 상대방의 단점만을 찾아내 폄하하는 일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건축위원회를 운영했던 2년 동안 싸우면서 친해진 창업가들에게 필자는 입버릇처럼 “황제병에서 빨리 벗어나라”고 말한다. 그래야 회사가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스스로가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회사가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나면 기존 사업의 운영은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고 창업가는 신규 사업 발굴에만 전념하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 될 것이다. 반대로 전문 경영인은 신규 사업 발굴을 위해서 창업가와 같은 성향의 고집 센 부하를 옆에 두고 지원하며 응원해주는 것도 좋겠다.

남민우 벤처기업협회장 (다산네트웍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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