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길남씨 “딸들아 살아남아라, 독일 초청해 구해줄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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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신숙자(70)씨 사망 통보를 받은 사실을 8일 기자회견에서 밝히고 난 오길남(70)씨는 실의에 빠진 모습이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자신이 쓴 『잃어버린 딸들. 오! 혜원 규원』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혜원(36)·규원(33)은 북한에 있는 두 딸의 이름이다.

오씨는 “딸들이 죽음의 골짜기에서 ‘아빠’라고 하는 소리가 귓전을 맴돌아 매일 밤 잠을 제대로 못 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또 “집사람이 북한에서 ‘이렇게 범죄행위(간첩활동)를 계속할 거면 여기(평양 고려호텔) 12층에서 뛰어내려서 죽자’고 할 정도로 강단이 있었는데…”라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북한으로부터 신씨의 사망 통보를 받은 지 며칠이 지나 기자회견을 하는 이유는.

 “ 내 감정대로 북한에 대고 막말을 해버려 일이 더 어렵게 될까 걱정을 많이 했다.”

 -북한은 신씨가 간염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독일에서부터 간염을 앓았나.

 “간염을 앓았다. 완치돼도 사람 몸이 약해진다. 독일 킬 대학병원에 가면 기록들이 있을 거다. 나는 당시 북한에 가면 정양(요양)이 가능해 다시 건강을 회복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내 생각이 틀렸다. 집사람이 북한에서 사는 걸 무서워했다. 대남방송 일을 시키니 무섭지 않겠나. 그래서 몸이 좋진 않았다.”

 -부인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믿나.

 “ 나는 지금도 여전히 살아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일본인 메구미 납치 사건, MIT 공학도 이재환씨 사건 등을 보면 북한은 그들이 자살했다고 얘기하지만 믿을 수가 없다. 살아서 얼싸안고 제 아내와 두 딸의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고 싶다.”

 -북한은 ‘두 딸이 당신을 아버지로 여기지 않는다고 하고 당신을 가족을 버린 패륜아’라고 했는데.

 “나는 가족을 버리지 않았다. 코가 꿰여서 평양-덴마크로 갔다가 독일을 거쳐 한국으로 오게 된 것이다. (울먹이며) 지금 혼란스럽다. 내가 어릴 때부터 두 딸의 친구였다. 딸들과 자전거 타고 ‘야호’ 하면서 힐 운하까지 다니면서 지냈다.”

 -딸들을 구할 방안이 있나.

 “북한 정권이 무너지는 게 최선이다. 당장은 힘들 것 같다. 딸들을 독일로 초청하겠다. 두 딸은 독일에서 태어나 독일 국적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북한에 갔다. 현실적으로는 제일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다. 유엔보다 더 효과적인 창구라고 본다.”

 -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혜원, 규원 둘 다 꿋꿋하게 살아라. 시키는 대로 해서 생명을 유지해라. 아빠가 구해주기 전까지.”

한영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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