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광청 영화같은 구출 ‘새장 탈출’ 메일로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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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광청

중국 시각장애인 인권변호사 천광청(陳光誠·진광성·41)이 가택연금 상태에서 탈출, 미국대사관에 들어간 과정이 밝혀졌다. 일본 아사히(朝日)신문과 로이터통신·뉴욕 타임스 등 외신이 보도한 천의 탈출기는 영화 ‘쇼생크 탈출’을 방불케 하는 극적인 장면의 연속이었다.

 아사히신문과 로이터통신은 중국 산둥(山東)성 린이(臨沂)시 이난(沂南)현 교외에 머물고 있던 천을 발견해 베이징(北京)으로 데려온 여성 인권운동가 허페이룽(何培蓉·40)과의 인터뷰를 8일 보도했다. 지난달 21일 낮 허는 천광청의 지인으로부터 “새장의 새가 탈출했다”는 메일을 받고, 베이징에서 구출작전에 함께할 다른 5명을 만났다. 차량을 동원할 사람, 천과 연락할 사람 등 역할 분담을 했지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서로 이름과 연락처 등을 교환하지 않았다.

 실제로 천광청이 자택에서 탈출한 것은 4월 22일이 아닌 4월 19일 오후 9시쯤이었다. 감시요원은 방마다 여러 곳에 컵을 놓아두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천광청이 움직여 컵을 떨어뜨리면 그 소리를 듣고 달려올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함정이었다. 천은 함정 위치를 미리 파악해둔 뒤 감시요원이 물을 마시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집을 나섰다. 옆 동네로 이동한 천은 여러 집의 문을 두드렸지만 그가 연금 상태인 것을 아는 주변 마을 사람들은 선뜻 도울 엄두를 내지 못했다. 허는 “마음속으로는 모두 동정했는지 경찰에 신고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천광청은 돼지우리에서 잠을 자면서 17시간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린이시까지 도주했다. 허는 22일 천광청을 만나 자신의 차에 태우고 베이징으로 이동했다.

이튿날 미국 텍사스에 본부가 있는 중국인권단체 차이나에이드에 이 소식을 알렸고, 베이징에서 합류한 인권운동가 후자(胡佳) 등과 상의한 끝에 미국대사관이 가장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천은 베이징의 지지자들과 함께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녔고, 지원자 중 한 사람이 미 대사관 측과 접촉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베이징에 있던 미 국무부의 법률고문 해럴드 고(한국명 고홍주)는 시각장애에다 다리에 심한 부상을 입은 천을 ‘착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인도주의적 지원을 할 수 있는지 미국 측과 협의했다. 미국 측은 대사관에서 수㎞ 떨어진 곳에 숨어 있던 천에게 차량을 보내 데려오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대사관 차량과 천을 태운 차량이 접선하려는 순간, 두 대의 중국 공안 차량이 그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천광청을 태운 차량이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서 꼼짝할 수 없게 되자 미 대사관 차량이 옆으로 끼어들어 재빨리 천을 옮겨 태웠다. 대사관 차량은 베이징 시내에서 추격전을 벌이다 중국 공안을 따돌리고 대사관 진입에 성공했다. 드라마틱한 천광청 사건이 전 세계에 타전되는 순간이었다.

박소영 기자

천광청 탈출 과정

19일
- 오후 9시, 천광청이 자택에서 탈출
- 돼지우리 등에서 잠자며 17시간 동안 도주

20일 밤~22일
- 린이시에서 여러 지원자의 도움으로 몸을 숨김

21일
- 낮 천광청 탈출을 조직적으로 도운 6명에게 ‘새장의 새가 탈출했다’는 메일 도착

22일
- 허페이룽의 차를 타고 베이징으로 이동

23~26일
-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며 은신 (미국 대사관이 본국과 상의 후 천광청 돕기로 결정)

26일
- 미 대사관 차량과 천광청 탄 차량 접선
- 공안 과 추격전 벌이다 주베이징 미국 대사관 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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