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FL] 인종차별에 희생된 흑인쿼터백 질리엄

중앙일보

입력

`인종차별에 꺾인 쿼터백의 꿈'

인종차별이 거셌던 70년대에 미국프로풋볼리그(NFL) 피츠버그 스틸러스에서 흑인 쿼터백으로 활약했던 조 질리엄이 50번째 생일을 나흘 앞둔 26일 심장마비로 짧지만 불꽃같은 생을 마감했다.

대학시절인 70년과 71년 대학풋볼 올스타격인 올아메리카팀에 연거푸 뽑혀 주목을 받았던 질리엄은 촉망받는 쿼터백으로 72년 피츠버그에 입단했다.

하지만 68년 말린 브리스코가 흑인 최초로 NFL 주전 쿼터백으로 나선 뒤 몇몇 흑인 선수만이 인종차별의 벽을 넘어 쿼터백으로 출전할 수 있었던 프로세계에서 `풋내기'인 그가 출장기회를 잡기는 쉽지 않았다.

주전 쿼터백 테리 브래드쇼에 가려 2년동안 벤치만 지켰던 질리엄은 74년 브래드쇼가 파업으로 빠진 사이 백인들의 전유물이었던 쿼터백 자리에 드디어 선발 출장하게 됐다.

질리엄이 쿼터백으로 나선 6경기에서 피츠버그는 4승1무1패를 기록하며 선전,슈퍼볼에 진출한 뒤 우승까지 차지할 수 있었지만 정작 슈퍼볼에서는 질리엄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흑인 쿼터백에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홈팬들이 질리엄에게 협박편지를 보내고 구단에는 경기장에 폭발물을 설치하겠다는 전화를 하며 압박을 가해오자 피츠버그는 질리엄을 출전명단에서 제외한 것.

억울하게 주전자리를 뺏긴 질리엄은 이후 출전 기회를 거의 잡지 못하다 75년 마이너리그로 강등됐고 낙심한 나머지 마약에까지 손을 대 챔피언반지를 전당포에 맡기는 등 끝을 모르고 추락해갔다.

이후 마약은 물론 술까지 끊은 질리엄은 마약재활원 상담원과 청소년 대상의 풋볼교실에서 교사로 활동해 왔고 최근에는 자신의 굴곡진 인생을 담은 자서전을 준비 중이었으나 갑작스런 죽음으로 빛을 보지 못했다.

당시 피츠버그 감독이었던 척 놀은 "당시에는 흑인이 쿼터백으로 뛰는게 얼마나 험난한 것이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며 "질리엄은 훌륭한 선수였다"고 애도를 표했다.(서울=연합뉴스) 이정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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