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 100원에 팝니다" 北시장서 직접 목격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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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성 시인이 서울 논현동 사무실에 펼쳐진 평양 위성 사진 위에 누워 있다. 옆에 놓인 노트는 그가 탈북할 당시 가져온 시작(詩作) 노트.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다음달 26일부터 7월 1일까지 영국 런던에서 시 축제 ‘더 포이트리 파르나소스(The Poetry Parnassus)’가 열린다. 제30회 런던올림픽(7월 27일 개회)에 참가하는 204개국을 대표하는 시인들이 참여한다.

 북한도 런던올림픽 참가국이다. 그러나 이 축제에는 참가하지 않는다. 북한에는 순수문학이 없기 때문이다. 축제 조직위는 대신 탈북 시인 장진성(41)씨를 북한 대표 자격으로 초청했다. BBC·가디언 등은 “김정일의 관변 시인이 런던에 온다”며 관심을 나타냈다.

 장씨는 2004년 초 탈북했다. 남한에 정착해 시집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 등을 펴냈다. 현재는 북한 전문 인터넷신문 ‘뉴포커스’ 대표로 있다. 3일 오전 서울 논현동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사무실에는 북한 조선중앙방송이 실시간으로 나오고 있었다. 장씨는 “런던에서 세계 문인들을 상대로 북한 인권 상황을 고발할 생각이다. 런던에서 평양으로 시(詩)의 장거리 로켓을 쏘겠다”고 말했다.

 장씨는 평양음대와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했다. 평양음대 시절 썼던 시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눈에 들어 1994년 조선중앙방송 기자로 특채됐다. 96년부터는 노동당 통일전선부(통전부) 소속 시인으로 일했다. 대남 심리전 담당이었다. 그는 ‘김경민’이란 가명으로 활동했다. 남한에선 민중시인으로 알려진 이름이다. 99년 5월 22일 노동신문에 실린 ‘영장의 총대 위에 봄이 있다’는 시가 그의 작품이다. 김 위원장이 “선군시대의 모범 시”라고 극찬했다는 시다.

 “한국 대학가에 떠돌던 상당수 민중시가 통전부 시인들의 작품이었습니다. 99년에 시 덕분에 김정일을 두 번 만난 일이 있는데, 김정일이 자꾸 울더라고요. 권력만 있었을 뿐 매우 외로운 사람이었죠.”

 장씨는 통전부에 들어가면서 남한 사정을 자세히 알게 됐다. 특히 김정일이 “통전부를 평양 속 서울이 되게 하라”고 지시하면서 남한 방송이나 서적 등을 직접 접했다. “사흘 늦게 들어오는 중앙일보도 꼼꼼히 읽었다”고 했다.

 “고난의 행군을 통과하던 때라 평양에도 굶어 죽는 사람들이 속출하던 때였죠. 가장 가난한 나라에 가장 부유한 왕이 살고 있다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그 즈음부터 그는 체제를 비판하는 시를 노트에 적기 시작했다. 친구들에게 남한의 실상을 알리기도 했다. 그러다 2004년 1월, 남한 잡지를 돌린 게 적발돼 탈북했다. 탈북 당시 노트 2권을 챙겨왔다. 그 노트에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라는 시가 적혀 있다. 99년 평양 동대원구역 시장에서 직접 목격한 장면을 옮긴 시다.

 “딸을 100원에 팔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심정을 떠올려보세요. 그게 북한의 현실입니다. 탈북자들은 목숨을 걸고 대한민국에 옵니다. 북한에 대한 환상을 가진 일부 젊은이들과 정치 세력이 공짜로 주어진 자유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장씨는 북한에 가족 일부가 있다. 어머니를 말할 때, 그는 머뭇거렸다. “탈북자의 가슴에도 철책선이 있다. 탈북을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죄책감 때문이다. 북한 정권이 하루빨리 붕괴되는 게 불효를 씻을 수 있는 길”이라고 그는 말했다. 지난해 결혼한 장씨는 올 연말께 아빠가 된다. 그의 어머니가 손주를 안아볼 날이 올까. 그는 “북한의 참혹한 현실을 알리는 시를 꾸준히 발표하겠다”고 했다.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 -장진성

그는 초췌했다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

그 종이를 목에 건 채

어린 딸 옆에 세운 채

시장에 서 있던 그 여인은

<중략>

당신 딸이 아니라

모성애를 산다며

한 군인이 백원을 쥐어주자

그 돈 들고 어디론가 뛰어가던 그 여인은

그는 어머니였다

딸을 판 백원으로

밀가루 빵 사들고 허둥지둥 달려와

이별하는 딸애의 입술에 넣어주며

-용서해라! 통곡하던 그 여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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