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또 조류독감 공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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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동남아 국가에 조류독감 경보가 다시 확산되고 있다. 닭.오리 등 조류가 걸리는 독감이 사람에게 전염돼 인명을 빼앗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 언론은 23일 "하노이에서 남쪽으로 400km 떨어진 차우 호아 촌락에서 주민 200여 명이 조류독감 유사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중 다섯 살 된 남자 아이는 양성반응을 보여 보건당국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아이의 누이(13세)는 지난 9일 독감으로 숨졌다.

이에 대해 보건당국은 "언론이 과장보도한 것"이라고 부인했다. "촌락의 일곱 가구를 조사한 결과 한 명이 조류독감 유사 증세를 보였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베트남에서 조류독감에 대한 우려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모두 26명이 감염돼 14명이 숨졌다. 전국의 64개 성(省) 가운데 35개 성이 감염지역으로 확인됐다.

조류독감은 지난해 중국 대륙과 동남아는 물론 한국.일본까지 확산됐다. 각국 정부는 당시 닭.오리 등을 집단 도살하는 등 대대적인 방역조치를 내렸다.

세계보건기구(WHO)의 한 관계자는 "베트남은 물론 각국의 보건당국이 협조해 전면 검사를 한 뒤 방역 협조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WHO도 방역 전문가들을 조속히 파견할 방침이다.

홍콩대학의 판례원(潘烈文) 미생물학과 교수는 "촌락 주민들이 걸린 게 조류독감이 맞다면 이는 사람끼리 전염될 수 있다는 뜻"이라며 "그럴 경우 이 신종 전염병은 전 세계로 급속히 퍼져나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다수 전문가는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조류에서 사람으로 전염될 뿐,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전염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조류독감 바이러스 중 H5N1형은 사람끼리 옮길 가능성이 낮다"고 한다. 실제로 사람 간의 전염 사례는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았다.

문제는 환자의 체내에서 H5N1과H3N2가 만나는 상황이다. "두 개의 바이러스가 만나 인체 간 전염이 되는 새로운 형태가 출현하면 세계적인 대재앙을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각국 정부가 정치.경제적인 상황을 고려해 조류독감의 실상을 축소.은폐하고 있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미국 전염병 통제.예방센터의 관계자는 "모든 전염병은 초기부터 말기까지의 단계가 있는데 현재 보고된 사례는 모두 중증환자뿐"이라고 말했다.

홍콩은 조류독감이 발생하는 즉시 ▶가금류 살처분▶외국산 제품 수입 중단▶방역 시스템 가동▶단체관광 중단 등의 시나리오를 마련해 놓았다. 홍콩에선 최근 유행성 독감이 번져 정부.개인 병원의 외래환자가 각각 30%, 70% 늘어났다.

홍콩=이양수 특파원

◇조류독감이란=조류끼리 전파되는 독감.1997년 홍콩에서 사람에게 조류독감이 전파된다는 사실이 처음 발견됐다.바이러스 표면에 있는 단백질의 종류에 따라 위험도가 달라진다.H(혈세포 응집소)와 N(신경 화학 물질 중 하나)이라는 두 종류가 있다.홍콩에선 당초 H5 계열의 바이러스가 발견됐으나 2003년 말 H9 계열이 검출됐다.H·N 단백질의 유전자 배열이 바뀌어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가 끊임없이 생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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