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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불균형 깰 전국 환상철도 아쉬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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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이 아닌 다른 곳은 모두 지방이라고 부른다. 서울을 모든 것의 중심으로 하는 그 같은 생각은 서울 사람들이 더욱 심한 것 같다. 서울의 지하철 노선을 들여다 보면 거의 모두가 사대문 안을 중심으로 방사선처럼 펼쳐져 있다.

얼마 전 필자는 대전에 위치한 계룡산자연사박물관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 후엔 박물관 측의 초청으로 대중강연을 하기도 했다. 그곳 출신의 독지가가 평생의 업으로 전 재산을 들여 만든 사립박물관이다. 그를 보면서 필자가 몸 담고 있는 포항의 가속기연구소도 함께 떠올렸다.

박물관에 소장된 공룡은 세계에 내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는 최고의 소장품이었다. 포항 방사광가속기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기관은 설립 주체가 정부가 아닌 민간이고 모두 서울이 아닌 지방에 있다는 점에서 홀대되고 있는 것이다.

처음 박물관을 돌아보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이런 규모의 노력이 진행되고 있었음에도 왜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을까. 만약 이런 일이 서울에서 일어났다면 '소위' 중앙 일간지에 다투어 소개가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 일이 개인 아닌 중앙 또는 지방 정부에 의해 수행됐다면 또 어땠을까.

인터넷을 뒤져보니 대전 지역의 일간지에서는 박물관 소개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포항에 사는 사람이 대전 지역 일간지 내용을 바로 알 수가 있겠는가.

서울에 근거지를 둔 중앙지는 지방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다는 생각에 꼭 한 면은 지방 기사를 다룬다. 그런데 이 내용은 독자가 보는 그 동네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중앙 신문들은 타 지역의 소식은 엄청난 사고(?)가 아니면 잘 보도하지 않는다.

방송 역시 마찬가지다. 오후 9시 뉴스에서 해외소식을 할 때쯤이면 지역 방송국이 끼어든다. 마치 지방 사람들은 해외뉴스는 알 필요없다는 방송국 측의 친절한 배려 같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는 지방이라는 생각, 정부가 하는 일이 개인 또는 사립 단체가 하는 일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하지 않을까. 현 정부가 지향하고 있는 지역 발전 불균형을 타파하기 위한 노력은 모든 것이 서울로 통한다는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과제다. 그런데 이 역시 서울에서 나누어 준다는 생각이 밑에 깔려있는 듯하다. 필자의 생각이 너무 민감한가.

다시 서울지하철 노선을 들여다 본다. 그리고 2호선을 보면서 해결책을 생각해 본다. 방사선처럼 뻗어나간 노선을 모두 이어 연결해주는 전국 환상선(環狀線)에 문득 생각이 미친다. 이야말로 서울이 모든 것의 중심이라는 사고를 깨뜨릴 수 있는 훌륭한 대안 아닌가. 지역과 지역이 서울을 통하지 않고 직접 서로서로에게 관심을 가질 때에야 비로소 지역 불균형이라는 말이 없어질 것이다. 서울지하철 2호선처럼 지방이 각기 고유한 특색을 유지하면서도 상호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전국 환상선(幻想線)을 타 보고 싶다.

고인수 (포항공대 교수, 포항가속기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