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박지성, 어디 갔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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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왼쪽)이 1일(한국시간) 영국 맨체스터 이티하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맨체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 빈센트 콤파니와 공을 다투다 넘어지고 있다. 맨유는 콤파니의 헤딩 결승골로 0-1로 졌다. [맨체스터 AP=연합뉴스]
경기 전엔 웃었지만

프리롤(Free role). 박지성(31)을 바라보는 71세의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감독의 표정은 비장했다.

 노(老)감독은 1일(한국시간) 영국 맨체스터 이티하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와의 정규리그 맞대결을 앞두고 7경기 연속 벤치를 지키고 있던 ‘박지성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것도 박지성에게 포지션에 얽매이지 않는 프리롤 역할을 주문한 것은 이례적이다. 퍼거슨 감독은 큰 경기와 승부처에 유독 강한 박지성의 장점에 희망을 걸었던 것 같다.

맨유 한 골 먹고 나자

 그러나 57분 동안 그 결정적인 ‘한 방’은 터지지 않았다. 맨유는 맨체스터 더비 경기에서 전반 종료 직전 맨시티 수비수 빈센트 콤파니에게 허용한 실점을 만회하지 못해 0-1로 졌다. 결국 맨유는 프리미어리그 2연패도 통산 20번째 우승 도전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올 시즌 26승5무5패를 기록 중인 맨유는 승점 83점으로 맨시티와 동률을 이뤘으나 골득실(맨유 +53, 맨시티 +61)에서 뒤져 리그 선두 자리를 내주고 2위로 밀려났다. 자력 우승 가능성도 사라졌다. 남은 두 경기를 모두 이기더라도 맨시티의 경기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

열 받은 퍼거슨

 키 플레이어 역할을 맡은 박지성의 부진이 패배에 상당 부분 영향을 미쳤다. 3월 16일 열린 아틀레틱 빌바오와의 유로파리그 경기 이후 한 달 반가량 그라운드를 밟지 못한 박지성의 경기 감각은 정상이 아니었다. 동료들과의 호흡도, 움직임의 효율성도 모두 떨어졌다. 퍼거슨 감독이 기대했던 존재감을 전혀 드러내지 못했다. 박지성은 0-1로 뒤진 후반 13분 교체돼 벤치로 물러났다.

 영국 언론은 박지성에게 비난의 화살을 집중시켰다. 스카이스포츠는 “(동료들의) 페이스를 따라가지 못했다”고 맹공했다. 골닷컴 또한 “20분 만에 지쳐버린 듯했다”며 비난 대열에 가세했다. 두 언론사는 양팀 선수들을 통틀어 박지성에게 최저 평점(4.0)을 줬다.

 맨시티전 패배는 맨유의 우승 여부 못지않게 박지성의 미래도 불투명하게 만들었다. 박지성은 지난해 8월 맨유와 재계약 협상을 해 계약 기간을 2013년 6월까지 1년 연장했다. 당초 2년 이상의 장기 계약을 원했지만 구단 측이 반대했다. 맨유는 서른 살을 넘긴 선수의 경우 1년 단위로 계약을 연장하는 전통 아닌 전통을 내세워 단기 계약을 관철시켰다. 계약 만료를 1년여 앞둔 박지성은 이 때문에 조만간 다시 재계약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그 결과는 예측 불허다.

 박지성은 올 시즌 27경기에 출장했지만 주전 경쟁에서 밀린 탓에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은 경기에 집중 투입됐다.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의미다. 퍼거슨 감독은 충성도 높은 선수를 아끼지만 전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 선수는 가차없이 내치는 것으로도 악명이 높다.

송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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