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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 능력 800㎞는 확보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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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신범철
한국국방연구원 북한군사연구실장

인공위성을 빙자한 장거리 미사일 발사 이후 북한에 상응하는 독자적 미사일 역량 강화를 주문하는 국민 여론이 상당하다. ‘왜 우리는 앞선 경제력과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미사일 지침의 제한으로 인해 사거리 300㎞, 탄두중량 500㎏ 이상의 탄도미사일을 개발할 수 없느냐’는 불만이다.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를 거론하며 한국의 탄도미사일 능력 강화가 국제규범의 위반인 양 지적하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MTCR은 미사일 기술의 수출과 확산을 통제하기 위한 국제적 합의며, 억제력 확보를 위해 자체적으로 미사일을 개발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한국의 탄도미사일 개발이 주변국을 자극해 군비경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주장도 옳지 않다. 중국과 일본은 우리의 최대 교역국들로서 군사적 대립관계에 있지 않고, 한국이 북한의 심각한 미사일 위협에 노출돼 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설사 의심의 눈으로 바라본다 해도 ‘적정 사거리 준수’와 ‘투명성 강화’를 통해 신뢰를 키워나가면 된다.

 미사일지침 개정을 한·미 간의 외교적 갈등 문제로 접근하는 시각 또한 잘못이다. 미국이 국제비확산체제의 리더로서 미사일 사거리 연장에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군의 미사일 능력 향상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이후 한·미 군사동맹의 능력을 강화하는 긍정적 측면도 존재한다. 동맹의 군사적 필요에 따라 조율해 가면 될 일이다.

 그렇다면 미사일지침 개정은 왜 반드시 필요한가? 그것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이 압도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미사일지침이 처음 만들어진 1979년은 한국의 탄도미사일 능력이 북한에 대해 우위에 있던 시기였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북한의 탄도미사일 능력이 급상승하며 한국을 능가하게 되었다. 2001년 개정된 현 지침은 현저히 증가된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결과였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남북 간 탄도미사일 능력 차는 또다시 벌어졌다. 북한은 사거리 1600㎞의 노동미사일을 더욱 개선했고, 사거리가 3000㎞ 이상일 것으로 추정되는 무수단미사일도 배치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 목적의 장거리 로켓 발사를 네 번이나 했고, 미사일에 싣기 위한 핵탄두 개발을 위해 핵실험도 두 차례나 했다. 우리 영토 전체와 국민 모두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노출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과 같이 외부의 군사위협 속에서도 탄도미사일 능력의 비대칭적 열세를 지속하는 국가는 지구상에 없다. 이스라엘의 경우 이미 90년대에 사거리 1400㎞에 이르는 ‘제리코(Jericho) II’ 탄도미사일을 배치했고, 최근에는 사거리가 4400㎞에서 1만1500㎞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제리코 III’ 탄도미사일도 보유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탄도미사일 능력은 무엇인가? 북한의 위협이 대상이므로 한반도를 넘어설 필요는 없다. 아무리 짧아도 수도권 이남에서 북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800㎞ 내외는 확보해야 사거리 연장의 군사적 의미가 존재한다. 북한의 장사정포나 단거리 미사일에 노출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경마(競馬)에서는 종종 우수한 말에 무게를 더 얹어 불리한 조건에서 달리게 하는 ‘핸디캡 경주’를 한다. 능력의 균형을 위해서다. 미사일지침이 처음 만들어질 당시 한반도 안정을 위해 이 같은 균형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남북 간 탄도미사일 능력의 균형이 깨진 것은 물론이고 완전히 역전된 상황이다. 이제 한국에 씌워놓은 핸디캡을 풀어야 한다. 안보정책이 여론에 좌우돼서는 안 되지만 이번에는 국민여론이 진정 옳다.

신범철 한국국방연구원 북한군사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