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진짜 취미는 계란으로 바위치기"

중앙일보

입력

그와 마주한 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어느 새 그가 ‘장애인’이란 사실을 깜빡 잊게 됐다. 발음이 좀 어색하고 말이 느릴뿐 그는 여느 벤처기업인처럼 자신감과 패기가 넘치는 젊은이였다.

무선 인터넷 게임업체 (주)노리넷(http://www.norri.net)의 오대규(29) 사장 얘기다. 흔치 않은 ‘장애인 CEO’. 그것도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기술을 따라 잡고 번득이는 아이디어가 있어야 살아 남는 벤처업계의 장애인 사장이다.

장애인 사장이라고 ‘집에 돈도 좀 있고 옆에서 많이 도와 줬겠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의 경력을 보자. 95년 서강대 수석 입학, 99년 경영학과 수석 졸업, 재학중 현대증권 주최 모의증권투자대회 우승, AIG 근무 당시 영업실적 6개월 연속 1위, PC통신 하이텔 주식투자 칼럼 기고….

‘선천성 뇌성마비 장애인 3급’이라는 꼬리표가 믿기지 않을 정도다.

“나서는 걸 좀 좋아하죠.”

그가 몸이 불편한데도 이렇게 누구 못지 않은 ‘이력’을 남길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밝고 적극적인 태도가 오늘의 그를 만든 것. 그런 그라 ‘모험’을 감행하는 ‘벤처’ 세계에 뛰어들 수 있었다.

그는 우연찮게 ‘풋내기’ 벤처사업가가 됐다. 지난해 겨울 일이다. 평소 언젠가 ‘내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그에게 기회가 날아들었다. PC방에서 1년여간 틀어박혀 무선 인터넷 게임을 개발한 동생 친구들과 후배들이 손을 잡자고 제안한 것.

‘하늘이 준 기회’라고 생각한 오대규 사장은 덥썩 사업이란 걸 시작했다.

‘노리넷’이란 벤처기업은 이렇게 세상에 선보였다. 지난 7월 자본금 1억5천만원으로 법인 등록을 마친 노리넷은 11월 정식 영업을 시작했다.

노리넷은 그러나 무서운 ‘새내기’란 평가를 받고 있다. 벤처 인증과 비즈니스 모델 특허는 기본. 사업 개시 1개월여만에 이동통신 3개사에 노리넷이 개발한 무선 인터넷 게임을 공급하고 있다.

3천여 개에 이르는 무선 인터넷 게임업체 가운데 이동통신 사업자 3개 이상과 계약을 맺은 기업은 5개 정도에 불과하다.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증거다.

인터뷰 내내 노리넷 자랑을 하며 웃음을 잃지 않았던 그도 실은 아픔이 많았다. 지금은 무덤덤하게 말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이란 꼬리표를 달고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대충 짐작할 만하다.

그도 당연히 그랬다. 유년 시절 학교에서는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았고 대학 진학 때는 그렇게 원했던 의·약대 꿈을 접어야 했다. 대학을 나와서 사회에 첫 발을 디딜 때도 마찬가지였다. 성적이 더 좋았는데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밀려날 땐 현실의 벽이 그렇게 높아보일 수 없었다. 그런 아픔을 겪었지만 그는 장애인 스스로가 먼저 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부나 사람들만 보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장애인들이 먼저 세상으로 나와야죠. 그래야 편견의 벽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다만 이렇게 말한 그도 취미가 뭐냐는 질문엔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답했다.

장애인으로 살아온 그의 삶에 각인된 ‘흉터’ 탓일까. 그렇지만 어찌됐건 그는 다른 사람들 눈에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도전하고 성취감을 느껴왔다. 그래서 그는 한술 더 떴다. “그게 다가 아니라 바위를 깨뜨리는 것까지가 진짜 취미죠.”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고 말하는 그는 사업영역을 무선 포털 사이트 쪽으로 넓힐 욕심이다. 또 돈을 많이 벌면 장애인을 위한 사회복지관도 세울 계획이다. 그가 꿈과 도전정신을 품고 있는 한 ‘계란으로 바위 깨뜨리기’도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닐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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