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없는 TV는 저리 가라!

중앙일보

입력

어린 시절, 심지어 대학을 마친 후에도 필자는 TV를 많이 보는 편이었다. 그 당시는 대규모 네트워크가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독립적인 지역 방송국은 몇 군데밖에 없었고, PBS 방송국도 하나뿐이었다. 그후 케이블이 나오더니 나중에는 DSS 안테나도 나오게 됐다. 그런 후에 컴퓨터가 등장하는가 했더니 인터넷이 그 뒤를 따랐다.

요즘 필자는 스스로의 엔터테인먼트 취향을 분석하면서 TV의 우선순위가 그다지 높지 못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물론 필자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필자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광대역과 인터넷을 통한 TV에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는지를 이해한다. TV는 독자적인 팬들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TV를 인터넷에 둔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TV 자체가 여전히 탁월한 엔터테인먼트 장치이긴 하지만, 컨텐츠가 부실해지면서 팬을 상실하게 되고, 프로그램 제작 예산도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그 이상은 없다

필자는 최근 다이렉TV(DirecTV) 시스템을 채택했기 때문에 실리콘 스핀(Silicon Spin)과 기타 테크TV(TechTV)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다. 지역 케이블 회사는 이곳이 골프장도 없는 테크놀로지 지역이기 때문에 테크놀로지 채널보다는 골프 채널을 더욱 필요로 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위성 안테나를 달고 몇 달을 지내보니 ''채널만 500개면 충분하다''는 농담이 농담이라기보다는 현실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필자는 60∼70개 가량의 영화 채널을 제공해주는 HBO/Starz/Showtime 패키지를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방영해주는 것은 한결같이 따분한 영화들인 것 같다. 새로운 영화(따분하기는 마찬가지지만)는 한 달에 한두 편 정도 방영해주는 게 고작이다.

일례로 그들은 ''해리 크럼은 누구인가(Who''s Harry Crumb)''라는 프로그램을 도대체 몇 번이나 방영해줄 셈인가? 이런 채널들은 벌써 몇 달째 로닌(Ronin)이란 프로를 끊임없이 반복해 보여주고 있다. 어쨌든 한심한 영화 채널들은 축구 경기를 재탕하고 있는 무가치한 스포츠 채널들보다도 변변치 못하다.

물론 재미있는 TV 프로그램도 있긴 하지만, 그것은 고작 일주일에 10시간 정도일 뿐이다. 필자는 BBC 방송의 ''체프!(Chef!)''와 ''Absolutely Fabulous'', HBO 방송의 ''소프라노(The Sopranos)''와 ''래리 샌더즈 쇼(The Larry Sanders Show)''의 재방송은 앞으로도 시청할 것이다. 네트워크에서 볼만한 프로는 ''저스트 슛 미(Just Shoot Me)'', ''프래지어(Frasier)'', ''법과 질서(Law and Order)'', ''심슨 가족(The Simpsons)'', ''스타 트렉(Star Trek)'', ''내쉬 브리지(Nash Bridges)'' 뿐이다. 가끔은 축구 경기도 볼 것이다.

필자는 TV 시청보다는 인터넷 서핑, 독서, 요리, 심지어는 한꺼번에 10명과 온라인 채팅하는 것이 더 재미있다. 갈수록 TV를 덜 보게되는 사람이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주문형 인터넷 TV가 언젠가는 사람들이 원할 때 원하는 TV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기를 바란다. 사람들이 더 많은 통제권을 갖게 되면, 오히려 TV를 더 많이 보게될 것이다. 언젠가는 TV 인프라가 시청자가 원하는 프로를 제공해주는 하나의 대형 가상 VCR이 될 것이다.

이런 과정은 스트리밍 TV가 컴퓨터에 프로그램을 제공해주는 것으로 시작될 것이다. 불행히도 바로 거기서부터 나쁜 뉴스가 시작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컴퓨터 모니터로는 무엇이든 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컴퓨터에 여러 가지 튜너를 연결하는 작업을 마쳤지만, PC로 TV를 보게 되는 유일한 경우는 이를테면 중요한 축구 시합이 있는 시간에 일해야 할 경우뿐이다.

카우보이즈(Cowboys)나 포티나이너즈(Forty-Niners)가 약해진 이후 축구의 질이 심각하게 떨어졌기 때문에 필자는 축구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긴 하지만, 예외적으로 레이더즈(Raiders)의 경기는 본다. 따라서 필자는 TV 튜너를 컴퓨터에 설치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현재 리플레이TV(ReplayTV) 장비로 이뤄지는 것처럼, TV가 무슨 프로그램이든 시청자가 원할 때마다 케이블을 통해 내보내는 가상 VCR로 변신하면, 이것은 TV의 수익 모델과 마케팅을 반전시키면서 TV 경영자들에게 불리한 쪽으로 상황을 악화시킬 것이다.

패밀리 아워(family-hour)라는 컨셉은 물 건너갈 것이다. 다음 프로그램에 대한 선전은 그 프로그램이 몇 주 후에 시청될 경우에는 무의미해진다. 그밖에도 많은 문제들이 산재해 있다.

규모 축소의 필요성

사실 TV는 한 물 갔다. TV의 황금기는 끝났으며, 더 이상 좋은 프로그램도 없다. 이것은 되도록 좋게 말한 것이다. TV 업계는 먼저 규모를 축소하고, 살아남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할지 파악해야 한다.

점점 증가해 가는 인터넷의 인기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인터넷은 문자 매체이기 때문에 문맹률을 낮출 것이다. 이것은 좋은 추세다. 인터렉티브 게임은 아주 성공적이며, TV를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사회적인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스트리밍 미디어를 가지고 TV를 억지로 워크스테이션에 밀어넣는 작업만으로 TV의 운명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재고해야 한다. 그것은 시간과 돈의 낭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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