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에게 당장 전화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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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호 30면

나 같은 외국인 거주자에겐 공통된 두려움이 있다. 바로 지구 반대편, 저쪽 멀리에 살고 있는 가족에게 끔찍한 일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 두려움이 한국에 머무는 지난 9년 동안 내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는데 바로 지난주에 그 악몽을 겪었다. 나는 할아버지·할머니와 매우 가까웠다. 동생들이 알면 섭섭해할지 모르지만 그분들은 첫째 손주인 나를 끔찍이 아꼈다. 두 분은 내가 자란 동네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쯤 떨어진 곳에 사셨다. 우리는 명절과 주말을 거의 항상 함께 보냈다. 내가 어른이 돼 집을 떠나 생활하면서 가끔 부모님을 찾아뵐 때도 며칠은 꼭 할아버지 댁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러나 4년 전 할아버지가 백혈병으로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는 모든 것이 변했다. 다행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나는 고향에 있었다. 할아버지의 죽음은 큰 충격이었지만 내가 그날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만은 위안이었다. 하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난주는 달랐다. 할머니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부터 몸이 안 좋아져 침대 신세를 지고 계셨다. 간호를 잘 받고 있었지만 건강했던 시절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몇 주 전 할머니는 폐렴을 앓게 됐다. 아예 음식을 못 먹고 말하기조차 힘들어하기 전까지만 해도 식구들은 할머니가 폐렴을 멋지게 극복해낼 줄 알았다.

얼마 전 아버지한테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할머니에게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의사가 말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매일 출근 전에 미국 부모님에게 전화를 해 할머니의 안부를 물어봤다. 할머니에게도 전화를 했다. 할머니는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손녀 목소리인 건 아는 듯하다’는 아버지의 말에 조금 위안이 됐지만 그 자리에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하지만 회사에 출근해야 하기에 오래 전화할 수 없었다. 고향의 가족은 할머니 곁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나는 일하러 가야 하다니….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미국에 전화를 했는데 어머니 목소리가 예전과 달랐다. ‘드디어 끝이 왔구나’ 본능적으로 느꼈다. 할머니는 내가 전화하기 5분 전에 돌아가셨다.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뭘 어떻게 해야지. 오랫동안 힘들게 병을 앓았고, 돌아가시는 것이 어느 정도 예상돼 어쩔 수 없는 일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슬픔을 참기 어려웠다. 내가 미국에 가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수없이 많았다. 고향 부모님도 저 멀리 한국에 있는 딸이 회사 일을 그만두고 비싼 비행기 표를 사서 미국에 올 것이라고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다른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미국 고향 집에 가야 한다는 것 이외에는.

할머니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빨리 비행기를 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사무실 동료가 이 소식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좀 걱정이 됐다. 동료들은 나와 내 가족을 충분히 이해해주리라 믿었지만 조부모 장례식에 대한 회사의 방침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동료들 모두 나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걱정해줬다. 그들의 친절함과 도움에 감사한다. 나는 다음 날 아침 바로 비행기를 탔다. 내가 간다고 해서 상황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긴박하고 급작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 곧바로 내 마음뿐 아니라 몸이 가족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가족의 죽음은 나 같은 외국인 거주자뿐 아니라 지구촌 모든 이에게 끔찍한 일이다. 인생은 너무 짧고 소중하다. 어려움을 겪고 나서야 우리는 진정으로 소중한 게 뭔지 알게 된다. 여러분에게도 권하고 싶다. 오늘 당장 사랑하는 가족에게 전화하시길.



미셸 판스워스 미국 뉴햄프셔주 출신. 미 클라크대에서 커뮤니케이션과 아트를 전공했다. 세종대에서 MBA를 마치고 9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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