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원전 조사한 그린피스 “부산·울산도 후쿠시마처럼 비상구역 30㎞로 넓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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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부산 국제크루즈터미널에 입항한 2070t급의 에스페란사호. 그 옆에 정차한 1t 트럭이 매우 작아 보인다. [송봉근 기자]

26일 오전 부산시 영도구 국제크루즈터미널. 국제환경단체인 그린피스의 조사탐사선 ‘에스페란사호(Esperanza·스페인어로 희망)가 정박해 있었다. 배 뒤쪽에는 ‘GREENPEACE(그린피스)’라고 적혀 있었다. 이 배에는 평소 20여명의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생활한다.

 에스페란사호는 대만에서 인천을 거쳐 25일 부산에 입항했다. 지난해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1년 가까이 일본에 머물며 조사한 ‘후쿠시마 원전 피해 보고서’를 발표하고 ‘부산의 방사능 방재계획의 현실’도 알리기 위해서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현재 한국은 원자력기구(IAEA)의 권고기준을 따르지 않고 일괄적으로 8~10㎞ 범위의 비상계획구역을 지정하고 있다. 이를 30㎞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획구역은 원전에서 방사능 누출사고가 일어났을때 피해 거리를 예측해 미리 대피소나 방호물품, 대피로를 준비하는 것을 말한다.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 이전에는 기존 8~10㎞를 비상계획구역으로 정했다가 사고 발생 후 범위를 30㎞로 확대했다. 따라서 부산도 이에 발맞춰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실제 헝가리와 미국의 경우 원전에서 80㎞까지 비상계획 구역으로 지정돼 있으며, 벨기에·핀란드 등 유럽 나라들도 반경 20~30㎞를 비상구역에 포함시켜 관리하고 있다.

 현재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 반경 10㎞ 이내에는 약 3만명이 살고 있다. 30㎞로 확대하면 부산·울산·경남 일부지역까지 포함돼 342만명이 넘게 된다. 서형림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후쿠시마 사례를 보면 누출된 방사능이 30㎞ 이상까지 날아간다”면서 “우리나라의 경우 10㎞ 이내의 비상계획구역 안 주민들은 대피훈련을 하지만 반경을 30㎞로 확대하면 사실상 99%의 시민들이 사고 시 대피요령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피도로도 문제다. 그는 “만약 고리원전에서 방사능 누출 사고가 난다면 부산·울산시민들도 모두 즉시 대피해야 하지만, 현재 고속도로나 일반 도로로는 단시간 안에 수백만명을 이동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면서 “ 대피소나 방호물품 등 대비책을 서둘러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30일까지 부산에 머물며 재생가능한 에너지사용을 확대하자는 ‘희망에너지 캠페인’을 벌인 뒤 강원도 삼척으로 이동한다. 28일에는 일반인에게 배를 공개한다. 문의 02-718-2229.

위성욱 기자  

◆에스페란사호=길이 71m 폭 14m 크기에 2070t인 이 배는 러시아 소방선을 개조한 그린피스의 대표적인 캠페인 선박. 기름 유출을 방지하는 연료 시스템과 선내 폐수 재활용 설비를 갖추고 있다. 태평양 생태계보호와 남극 포경반대활동을 주로 벌여왔다. 2008년 부산에 입항해 참치조업 반대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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